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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아

아티스트
자우림
앨범명
Goodbye, grief.
발매
2013.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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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
어여쁜 내 님아,
내 받고픈 것은 금도 돈도 아니라오.
서러워 마소,
그 고운 얼굴에 근심이 가득하오.
훠이 훠이 훠이

해사한 내 님아,
내 님 웃으라고 노래도 주고 꽃도 주리다.
다 지나가오,
그 고운 가슴에 슬픔일랑 묻지 마오.
훠이 훠이 훠이
훠이 훠이 훠이 훠이

님아, 내 님아 꽃 같은 님아.
님아, 내 님아 해 같은 님아.

님아, 내 님아 꽃 같은 님아,
어디 멀리 가지 마오.
님아, 내 님아 해 같은 님아,
혼자 그리 가지 마오.

강에 가면 검은 물이, 산에 가면 어둠이
내 님을 데려 가려 하네,
훠이 훠이 훠이 훠이 훠이

님아, 내 님아 꽃 같은 님아.
님아, 내 님아 해 같은 님아.


 

-처음에 재생목록에서 제목을 보았을 때 받은 인상: "님아? 나 초등학생 때 게임에서 자주 쓰던 말인데."

-다른 곡들에 비해 긴 전주. 도대체 무슨 노래이기에.

-마침내 시작된 노래. "어여쁜 내 님아 내 받고픈 것은 금도 돈도 아니라오. 서러워 마소..."

 

끝까지 다 듣고 몇 가지 곡이 떠올랐다. 하나, 이수영의 <휠릴리>. 둘, 민요 <아리랑>. 셋, 위치스 <떴다 그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참 생뚱맞은 조합이지만, 이 세 가지가 어우러진 느낌을 받았다. 한 곡 한 곡 설명해보기로 하자.

 

 <휠릴리>에 담긴 정서가 이 곡이랑 비슷하다고 느꼈다. 직접 글을 쓰면서도 기분이 묘하지만, 그랬다. 음색이나 곡의 속도나 연주하는 데 쓰인 악기 등등은 다 다르지만, '정서'가 거의 같다고 생각했다. 이쯤에서 <휠릴리>의 일부를 보자.

휠릴리~ 여길 좀 보아요 휠릴리~ 내게로 걸어와요
휠릴리~ 왜 잘못 가나요 잘 봐요 그녀가 아니라… 나예요…

* 얼마나 불어야 아나요 얼마나 커야 그대가 듣나요
고단한 사랑은 한번도 쉰적이 없는데
언제나 날 알아 보나요 언제나 날 사랑하게 되나요
그대가 나라면 참 쉬운 일일텐데

 <님아>에서 여러 번 반복되는  '님아 내 님아 꽃 같은 님아, 해 같은 님아.. 훠이 훠이 훠이.' 그리고 곡 전체를 통틀어서, 마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가지 말라고 절절하게 매달리는 듯한 여러 대목들('내 님 웃으라고 노래도 주고 꽃도 주리다' '강에 가면 검은물이 산에 가면 어둠이 내 님을 데려가려 하네'). 보고 싶고 곁에서 나를 사랑해줬으면 하는 건 두 곡 모두 마찬가지인 것이다. <휠릴리>가 좀 더 여성적으로, 다소곳하게, 어찌할 바 모르고 사랑을 노래하는 이미지일 뿐이지.

 이런 느낌의 연장선상에서 <아리랑>과 <떴다 그녀>를 떠올렸다. 온 국민이 다 아는 아리랑의 가사를 되새겨보시라.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 나를 버리고 가시는 임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 정말 진심으로 발병나기를 기원하는 저주의 노래가 아니라, 그만큼 내 님을 붙잡고 싶은 소망이 간절한 것임은 다들 잘 아실 것이다. 

 <아리랑>을 떠올리게 만든 요소가 더 있다면, 다소 예스러운 느낌이 나는 어미(아니라오, 하지 마오, 가지 마오). 그리고 이건 개인적인 연상인데, 곡을 듣고 있으면 왜 부채춤 같은 게 생각나는지. 내공 가득한 김윤아의 목소리가 빚어내는 이미지라고 생각한다. 꼭 판소리 창 하는 것처럼 구성지다.

 마지막으로 <떴다 그녀>. <떴다 그녀>는, 엄청 기다리고 바라고 쫓아다니던 그녀가 다시 내게로 왔다는 내용을 담은 곡이다. 빠른 곡으로, 우악스러운 느낌을 준다. 하지만 듣다보면 한 번쯤 '피식' 웃을만한 가사로 이루어져 있다. 좋아서 죽을 지경인 것이다. 그토록 사랑하고 바라던 그녀가 다시 내게 왔으니. 체면이고 뭐고 없다. 점잔 뺄 것도 없다. 그냥 좋아 죽는 것이다. 이리저리 뒹굴고 모양 빠지는 상황이 되어도 어쨌든 좋은 것이다. 왜? 그녀가 내게 왔으니까. <휠릴리>의 정서 + <떴다 그녀>의 정서가 반반쯤 어우러진 인상을 <님아>를 들으며 줄곧 받았다.

 

 웃프다. 미소 지어지는 동시에 가슴 한쪽이 조금 아프다. 현대판 아리랑이 아닐는지.

Posted by 비류
|

 (당분간은 <Goodbye, grief>에 수록된 곡에 대한 리뷰를 쭉 적을 것 같다. 최종적으로는 앨범 전체에 대한 인상을 담게 되겠지?)

 


이카루스

아티스트
자우림
앨범명
Goodbye, grief.
발매
2013.10.14
배경음악다운받기듣기

[가사]
난 내가 스물이 되면 빛나는 태양과 같이
찬란하게 타오르는 줄 알았고
난 나의 젊은 날은 뜨거운 여름과 같이
눈부시게 아름다울 줄 알았어.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 사소한 비밀 얘기 하나,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아.

자, 힘차게 땅을 박차고 달려 봐도
보이는 건, 보이는 건...

난 내가 어른이 되면 빛나는 별들과 같이
높은 곳에서 반짝이는 줄 알았고
난 나의 젊은 날은 뜨거운 열기로 꽉 찬
축제와 같이 벅차오를 줄 알았어.

아무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숨을 죽인채로
멍하니 주저앉아 있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

자, 힘차게 땅을 박차고 달려 보자,
저 먼 곳까지, 세상 끝까지.
자, 힘차게 날개를 펴고 날아 보자,
하늘 끝까지, 태양 끝까지.

난 내가 스물이 되면
빛나는 태양과 같이 찬란하게
타오르는 줄 알았어…

 지난주에 <스물 다섯, 스물 하나>에 대한 리뷰를 적은 뒤, 이번엔 어떤 곡에 대해 적어볼지 고민했다. 어쨌든 마음에 쏙 들어야 쓸 맛이 나니까. 이리저리 재생목록을 돌리던 중, 첫 느낌부터 확 끌리는 또 하나의 곡을 발견했다. <이카루스>. "난 내가 스물이 되면 빛나는 태양과 같이 찬란하게 타오를 줄 알았고." 마치 내 심정을 대변하는 것 같아서 피식 웃고 말았다. 가사를 띄워놓고 음악과 함께 살펴보니 더 가관이었다.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아", "자 힘차게 땅을 박차고 달려 봐도 보이는 건 보이는 건" ...

 타이틀곡 <스물 다섯 스물 하나>이외에 뮤비가 있는 곡은 이 한 곡뿐이 없다. 그만큼 비중을 뒀다는 의미인데.. <스물 다섯~>도 그렇고 이것도 그렇고 가사가 참 아련하게 다가왔다. 두 곡을 종합해서 듣고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니 '멜랑꼴리'한 느낌이다. 가슴 한 쪽을 묘하게 허전하게 만드는 느낌? 앨범 제목은 <슬픔이여 안녕>인데.. 그래서 앨범을 처음부터 끝까지 정주행했다(이런 경우는 정말 드문데. 참 큰 마력을 지닌 곡과 구성이다. 정주행 이후의 감상에 대해서는 맨 마지막, 앨범 종합리뷰에 다 적어두기로 하자. 일단 여기서는 <이카루스>에 대한 감상만 담아두기로!).

 

 정주행 이후 차분하게 <이카루스>를 다시 들었는데, 또 피식 웃고 말았다. '잘 들을 걸.' 특히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아는데. 노래도 그렇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2절 또한 1절과 비슷한 구조로 시작한다. "난 내가 어른이 되면.. 반짝이는 줄 알았고.. 축제.. 벅차오를 줄 알았어.." 하지만 뒤이은 부분에서 변화가 일어난다. 무척 마음에 들어서, 한 번 더 실어야지.

 "아무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숨을 죽인채로 멍하니 주저앉아 있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

  자 힘차게 땅을 박차고 달려 보자. 저 먼 곳까지 세상 끝까지. 자 힘차게 날개를 펴고 날아보자

  하늘 끝까지 태양 끝까지."

 그 직후에 도입부("난 내가 스물이 되면..")반복. 무척 사랑스러운 구성이다.

 

 얼핏 들었을 때는 '사실 스물이 되고 보니 난 아무 것도 아니더라'에 대한 좌절감, 넋두리에서 끝나는 한풀이 노래라고 느낄 수 있다. 자세히 들으면 그렇지 않기 때문에 나는 이 노래가 더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신화 속 이카루스는 추락사 하기 전에 새로 변하게 되어 간신히 목숨을 건졌고 그 영향으로 높이 않는 새가 되었다. 그러나 자우림의 <이카루스>는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진 뒤에 다시 꿋꿋이 일어나 다음을 기약하는 이미지를 떠오르게 한다. 재도약을 꿈꾼다. 그것도 아주 힘차게. 패기롭게.

 1절과 2절 사이의 '라 라 라'하는 몽환적인 간주는, 기어이 비상하고 말겠다는 독한 의지를 되새기는 시간의 느낌이다. 날개를 바꿔 다는 것 같기도 하고.. 재정비.

 그런 이유로 맨 처음과 맨 마지막에 반복되는 "난 내가 스물이 되면.."은 탄식이나 주저앉아서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이 아니라, 현실을 덤덤히 받아들이고 마음을 독하게 먹는 청춘을 떠올리게 한다.

 

 참 맛있는 곡이다. 재밌는 곡이다. 노래는 끝까지 들을 것.. 그리고 좌절하지 말고 자리 툭툭 털고 일어날 것 등등.. 여러모로 참 좋은 메시지를 준다. <슬픔이여 안녕>의 다른 곡도 깊이 감상해보고 해부해야겠다. 각자 곡은 형식이 다르지만, '앨범'이라는 한 가족의 형태로 담겨 있으니 일맥상통하는 어떤 것이 있겠지? 내멋대로 리뷰를 쓰면서, 보컬 김윤아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니 슬쩍 미소가 지어진다. 겉으로 보기엔 엄하지만 속은 따뜻한 누나/언니의 충고처럼 들린다. 음악이라는 매개를 통한 좋은 충고.

 

 "야,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도 몰라? 그러니까 주저앉아서 울지 말고 일어나. 뭐라도 해봐야 할 거 아냐."

Posted by 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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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다섯, 스물하나

아티스트
자우림
앨범명
Goodbye, grief.
발매
2013.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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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
바람에 날려 꽃이 지는 계절엔
아직도 너의 손을 잡은 듯 그런 듯 해.
그때는 아직 꽃이 아름다운 걸
지금처럼 사무치게 알지 못했어.
우~ 너의 향기가 바람에 실려 오네.
우~ 영원할 줄 알았던 스물다섯, 스물하나.

그 날의 바다는 퍽 다정했었지.
아직도 나의 손에 잡힐 듯 그런 듯 해.
부서지는 햇살 속에 너와 내가 있어
가슴 시리도록 행복한 꿈을 꾸었지.
우~ 그날의 노래가 바람에 실려 오네.
우~ 영원할 줄 알았던 지난날의 너와 나.

너의 목소리도 너의 눈동자도
애틋하던 너의 체온마저도
기억해내면 할수록 멀어져 가는데
흩어지는 널 붙잡을 수 없어.

바람에 날려 꽃이 지는 계절엔
아직도 너의 손을 잡은 듯 그런 듯 해.
그때는 아직 네가 아름다운 걸
지금처럼 사무치게 알지 못했어.

우~ 너의 향기가 바람에 실려 오네.
우~ 영원할 줄 알았던 스물다섯, 스물하나.
우~ 그날의 노래가 바람에 실려 오네.
우~ 영원할 줄 알았던 지난날의 너와 나.

우~
우~
우~ 영원할 줄 알았던 스물다섯, 스물하나.
스물다섯, 스물하나.

 

=================================================

나는 속에 맺힌 게 많아서 그런가, 호소력 짙게 부르짖는 대목이 있으면 어떤 노래든 확 이끌리곤 한다. 호소력 짙다는 건 물론 굉장히 주관적인 것이긴 하지만. 명확한 기준은 없다. 듣고 끌리면 그게 호소력 있는 거지 뭐.

 

 작년에 길거리에서 듣고 꽂혀서 애타게 찾았었는데, 드디어 발견했다(그땐 자세한 가사도 모르고 그냥 아아아아아아 하는 대목만 인상 깊었다. '무언가 속에 응어리진 걸 분출하는 노래 같은데, 묘하게 끌리네.' 첫인상.). 무척 기쁘다. 그리고 그게 자우림 것이라서 더 기쁘다. '과연!'했다. 음악에 대해 문외한인 내가 듣기에도 김윤아의 목소리는 내공이 있다.

 

 <스물 다섯, 스물 하나>. 제목 참 마음에 든다. 가사로 짐작해보았을 때 아마 남자 나이가 스물 다섯이고 여자가 스물 하나겠지. 하지만 딱히 연애관계를 생각하면서 이 노래에 젖어들어가는 게 아니다(그리고 실제로 많은 댓글들이 각자 자신의 스물 한 살, 스물 다섯을 추억하고 있었다.)스물 하나는 지났고, 아직 스물 다섯이 되지 않았지만, 나는 중고등학생 때를 추억하고 있다. 열 다섯과 열 아홉을. 내가 가진 꿈을 사랑하고, 그리고 그것을 위해 미친듯이 달렸던 시절. 또한 더할 나위 없이 특별한 존재로서 살아간다고 생각했던 시절. 그때, 문청시절.

("우~ 영원할 줄 알았던 스물 다섯 스물 하나.")

 

 난 아직 이십대 초반. 앞날은 창창하건만 어째서 이렇게 씁쓸한 마음이 드는지. 꿈의 횃불을 한 번 불태웠다가 다시 몸을 추스르고 있기 때문일까? 이제는 내 욕심 따라 살기보다는 하나님이 내 삶을 통해 원하시는 게 무엇인지 탐색해가는 과정을 거치고 있으니까.

 아무것도 모르고 순수하게 빛났던 그 시절의 아름다움이 때때로 묵직한 미소를 짓게 한다. 왜냐하면 상처로 얼룩진 아름다움이기 때문에. 상처투성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운 기억이기 때문에.

("가슴 시리도록 행복한 꿈을 꾸었지.")

 

 난 노래방 가는 걸 좋아한다. 특히 못다한 꿈에 대한 좌절감을 직격으로 마주하게 된 스무 살 스물 한 살 때는 유별나게 더 좋아했다. 친구들의 영향이 컸지만, 어쨌든 가서 목청껏, 목놓아서 속의 한을 소리로 질렀다. 노래를 빌어서(그거 아는지? 상처가 많은 사람들은 큰 소리를 지르지 못한다.). 그런데 나는 아직도 목마른가보다. 계속 소리를 질러야 하나보다. 이 노래를 듣자마자 절친에게 카톡을 했다. 노래방 가서 부르고 싶다고. 가게 되면 남키로 맞추고 열심히 감정을 실어야지. 삑사리 범벅이 될지언정.

("우~ 그날의 노래가 바람에 실려 오네. 우~ 영원할 줄 알았던 지난날의 너와 나.")

 

 지난 꿈에 대한 속풀이 시원하게 하고, 주어진 현재와 미래에 충실한 삶을 또한 살자!!

Posted by 비류
|

 


공명콘서트 - With Sea

장소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출연
공명
기간
2012.05.12(토) ~ 2012.05.13(일)
가격
R석 60,000원, S석 40,000원, A석 20,000원
글쓴이 평점  

(현재 진행중인 <With Sea>가 공연정보에 없어서 이것을 넣었는데.. 대학로예술극장 3관에서 진행되고 있다. 자세한 일정과 시간은 검색해보시라.)

 

 "꼭 다시 보러 오고 싶다."

 1시간 반의 공연동안 여러모로 참 즐거웠다. 여러 의미에서 신선했다. 생전 처음 보는 악기들(심지어 연주자가 직접 만든 것도 있고.), 손수 찍은 영상, 토크쇼를 생각나게 하는 편안한 분위기, 바다를 보며 느낀 감성을 그대로 전해주려 한 노력의 흔적, 신명나고 특색 있는 연주.

 소셜커머스를 통해 알게 되어 싼 값에 봤는데, 정가로 봤어도 무척 만족했을 것이다(아직 학생이라 50%할인 적용이 가능한 게 감사!^_^). 현금이 없어서 현장에서 앨범을 사지 못한 아쉬움도 있고.

 

 음에 대한 '기억'은 시간이 지난 지금 잊어버렸지만, 무언가 꽉 찬듯한 '느낌'은 잔잔하게 남아있다. 마치 바다처럼, 파도처럼.

 '공명', 앞으로도 공연이나 앨범이나, 주목해야지 ^^

Posted by 비류
|

 

 

아시나요. 원곡가수 조성모.

 원곡이 나왔을 때 나는 초등학교 저학년(아마 2학년 즈음이었던 것 같은데..)이었다. 그런데도 <아시나요>나 <다짐> 이 두 곡에 대한 인상은 뚜렷하게 남아있다(전자는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때문이고, 후자는 라이브 방송에서 조성모가 입고 있던 특이한 의상 때문이다.). <아시나요> 뮤비 마지막 부분에 조성모가 소녀를 끌어안고 괴롭게 울부짖는 장면이 기억에 확 박혔다. 스토리도 가사도 잘 알지 못하고, 다만 그것만이 남았다. '무슨 일이지? 왜 저 사람은 저렇게 울부짖지?'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 덕에 멜로디도 귀에 익어, 가끔 노래방에서 부르곤 했다. 키를 낮춰서 간신히(웃음).

 

 최근, 더 원이 <아시나요>를 불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랑아>덕에 좋은 인식을 가지고 있는 가수라, 버스 안에서 친구와 함께 들었다. 경연 당시 동영상으로. 다 듣고서 받은 인상은, '잘 부른다'와 '기본 곡에 완전히 자기 색깔 입혀서 변형시켰네'였다. 특히 후반부의 독백은 '실험적인 편곡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애절한 감정을 더 끌어내기 위한 장치라는 느낌 또한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나중에, 이 곡의 사연을 알게 되었다. 가수 되는 것도, 제대로 술 한잔도 기울여보지 못하고 먼저 가신 아버지께 바친다는 것. 그러고 나서 전체를 들으니 가슴이 저려왔다. 특히,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독백 부분은 도리어 눈물샘을 가장 강하게 자극했다. 

 "들리,십니까? 제 목소리가. 소리칩니다. 제 목소리가, 하늘에! 닿을 때까지~예~"

 "아시나요, 들리나요, 내 말들이~ 가슴 속에 맺힌 수많은 말이~"

 

 돌아가신 아버지께 바친다는 이야기를 배제해도, 가슴 속에 맺힌 게 많은 나는 '가슴 속에 맺힌 수많은 말이~'라는 부분이 그렇게 공감되고 아플 수가 없었다. 하고 싶어도 하지 못했던 말, 솔직하지 못했던 말, 꺼냈다가 애써 돌려서 숨겨야만 했던 말.. 잊었으면 좋겠는데 문득문득 떠오른다. 나 같으면 벌써 눈물 펑펑 흘려버렸을 텐데. 감정 절제하는 것 보면서 '가수는 다르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렇게 한바탕 아파하고 나서 또 감상하니, 가사가 참 좋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되었다. 서정적인 감정에 젖어 노래로 풀고 싶을 때, 이 노래를 들어야겠다. 바라기는, '가슴 속에 맺힌 수많은 말이'라는 대목에서 더 이상 마음이 저릿하거나 힘들지 않을 날이 왔으면 좋겠다.

Posted by 비류
|

 

 요즘은 돌아다니는 업무 대신, 사무실에서 서류확인 업무를 보고 있다. 돌아다니는 일은, 몸을 쓰고, 가끔 사람을 상대해야 하는 일이라서 피곤한 일로 생각했다. 위안인 게 있었다면 할당량을 다 채우고 남는 시간은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하루종일 서류작업을 하다보니 생각이 바뀌었다. 서류작업이 더 피곤하다. 서류대조/입력을 계속 하는 것도 이런데, 문서를 만들고, 보내고, 처리하는 건 얼마나 피곤할까? 확실히 직업은 적성과 흥미를 좀 더 우선해서 선택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서류작업을 반복하면서 지치지 않기 위해, 그리고 '생각'을 하기 위해 음악을 듣곤 한다. 동생과 함께 쓰던 멜론 아이디가 해제 되는 바람에, 전적으로 유투브에 의존하고 있다.

 내 구구절절한 사연은 여기까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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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곡 <Baby one more time>을 처음 들은 건 초등학교 때였다. 당시 나는 케이블TV로 만화채널 '투니버스'를 보는 게 생활이었다. 학원도 그리 많이 다니지 않아서 하루종일 본 적도 있었다. 그 중에 '그 남자 그 여자'라는 만화가 있었는데, 본방은 심야시간대라 보질 못하고, 뮤직비디오(?)처럼 짤막하게 나오는 것을 보았다.

 뮤비 시작부터 끝까지 배경음으로 깔린 게 바로 이 곡이었다. 초등학생이라 영어는 이제 겨우 시작단계여서 뜻을 몰랐다. 그러나 리듬이 계속 머릿속에 남았다.

 

 좀 더 자라고, 가사의 뜻을 해석할 수 있게 된 시점에는 내용이 이해되지 않았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걸 경험하고 있긴 했지만, 엄밀히 따지면 설익은 감정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깊이있질 못했다.

 그리고 20대를 맞이하고 있는 지금. 삶을 살아가고, 그러면서 이런저런 사람 사는 이야길 듣고, 남들이 연애하는 걸 보면서 많은 걸 느끼고 있는 이때가 돼서야 <Baby one more time>을 조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결정적으로, 최근에 어떤 일을 겪었기 때문이다.

 

 친하게 지내는 친구 둘이 있다. 하나는 남자고, 하나는 여자다. 그리고 어느 날 둘은 사귀기 시작했다. 몇 년을 사귀던 그들은, 깨졌다. 깨지기 전에 여자가 정말 많이 힘들어했고, 남자는 여자를 이해하지 못해 힘들어했다. 참다참다 폭발해서, 양쪽 모두 헤어지는 데 동의했다.

 그 뒤, 몇 번 둘을 따로따로 만날 기회가 생겼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어쩌다 연애사가 나오면 묵묵히 듣기만 했다. 남자는 여자에게 잘해주지 못한 데에 후회가 컸고, 여자는 남자에게 받은 상처 때문에 힘들어했다. 여자는 그와 마주치는 것 자체를 꺼려했다.

 

 그래서 그런 줄 알았는데, 얼마 전에 여자쪽의 솔직한 속내를 듣게 되었다.

 자기는 지금, 그 남자가 자기 곁에 없어서 너무 외롭고 힘들고 괴롭다고.

 다시 돌아와주었으면 좋겠다고.

 중간에서 늘 둘의 연애를 지지하고 응원해줬던 나는, 가만히 듣기만 했다. 의외라고 생각하면서.

 

 지금 이 스토리뷰(필자가 멋대로 만든 용어. Story+Review='Storyview')를 적으면서도 <Baby one more time>을 듣고 있다. 가사를 찬찬히 생각하면서 들으면 두 사람이 생각난다. 특히 여자쪽이. 그녀가 토로했던 속마음과 이를 겹쳐 들으면, 이 가사의 고백이 얼마나 처절한 건지, 내가 남자임에도 조금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스무 살 때 읽었던 에세이의 한 구절이 생각났다.

 '남자는 (여자의 마음 속에)들어가려 하고, 여자는 조금씩 자리를 내준다.'

Posted by 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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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유행가를 잘 안 듣는다. 마음에 드는 것 하나만 집중적으로 파는 매니악한 성격이 가장 큰 이유고(음악의 경우, 가수별로 노래를 듣곤 한다.), 또 철이 지나면 쉽게 잊히는 특징 때문이다. 물론, 옥석은 쭉 기억된다. 우리가 '명곡', '애창곡'이라 하는 것들도 세상에 나와선 '신곡'이었으며 유행가 시절이 있었으니까. 그러나 대다수는 시간에 쓸리고, 새 것에 파묻혀버린다. 재작년 이맘때의 유행가 목록을 가져와서 살펴봤을 때 우리가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 게 얼마나 될까? 음악이 지나치게 소비적인 느낌이 되는 것도 싫어하기 때문에, 유행가는 꺼리는 편이다.
 그렇지만, 아주 안 듣는 건 아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사람 많은 길거리를 지나다보면 자주 듣게 된다. 손님을 끌기 위해 온갖 매장에서 크게 틀어놓기 때문에. 공공장소에서는, 매너모드가 아닌 핸드폰 벨소리에서 짤막하게 듣게 된다. TV에서도 계속 나오고, 인터넷에서도 자주 볼 수 있다. 결정적으로, 나와 다르게 유행에 민감한 동생이, 많이 듣는다. 그래서 좋든 싫든 듣게 되어 있다.
 오늘 유독 버스커 버스커의 '정류장'을 흥얼거렸다. 노래가 "해질 무렵 바람도 몹시 불던 날"이라는 가사로 시작되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선명한 노을 이미지가 떠올랐다. 그리고 은근히 매력적인 드럼 박자가 계속 맴돌았다. 이어폰을 꽂고, 가사창을 띄우고 어떤 내용인지 제대로 인식하며 감상했다.
 총 3분 20초 정도. 그런데 같은 재생시간을 가진 다른 곡들보다 훨씬 짧다는 인상을 받았다. 내용에 몰입했기 때문일까? 무척 마음에 들었다. ...

 "바람 쌩쌩 부는 날, 해질 무렵. 냉혹한 세상에 상처 받은 청년이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어 집으로 돌아갑니다. 자괴감으로 가득 차서 파괴되기 일보직전입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여자가 '발을 동동 구르며' 자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가 사준 옷을 입고서요. 청년은 그녀의 품에 안겨 조용히 웁니다. 마음 속으로는 '그대라서 고마워요'라는 말을 하며." ...

 우리 청춘들은 중고등학생 때는 '좋은 대학' 하나만을 바라보고 살았다. 꿈을 꿔도 좋은 대학 가기를, 돈 많이 벌기를 꿈꾸도록 유도되었다. 많은 선생님들이 그렇게 지도한다.
 "자. 얘들아. 꿈을 꾸는 건 좋지만 현실이 녹록치 않단다. 나중에 뭐 해먹고 살래? 하고 싶은 건 대학 가서 하렴. 좋은 대학에 왜 가야 하느냐면, 성공할 확률이 높아지니까. 혹은 너네 연봉이 올라가니까. 좋은 직장 얻어서 예쁜/멋진 배우자랑 결혼할 수 있단다. 그리고 잘 먹고 잘 살 수 있게 되지. 즐기는 것도 그때 가서 해. 그럼 행복...할거다. 아마."
 대학에 와서는 학점, 토익, 기타 스펙에 시달린다. 스펙을 쌓고 쌓아도 취업이 안 된다. '스펙푸어'라는 단어까지 나왔다. 갖출 스펙을 다 갖췄는데도 취직이 안 되는 사람을 일컫는. 이런 냉혹한 현실 속에 그나마 위안이 될 수 있는 건, 사랑하는 사람들의 온정이다. '정류장' 속에는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이런 공감의 요소가 녹아있다.
 한편, 2011년,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이 수 십 주에 걸쳐 베스트셀러 1위를 했다. 이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대체 어떤 분야인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은 "2,30대 청춘들이 그만큼 위로를 바라는 것"으로 간단히 요약할 수 있는 장황한 분석을 내놓았었다.
 김난도 교수가 그 책에서 어떤 말을 어떻게 담아냈는지 모르지만, 나는 노래 '정류장'이 책 '아프니까 청춘이다'보다 더 파급력 있다고 생각했다.
  우선 노출량의 차이다. 우리나라 성인의 한 달 평균 독서량이 0.8권이라는 점과, 책 한 권을 다 읽는 데 드는 시간을 생각해보자. 길을 걷다보면 흘러 나오는 3분짜리 유행가보다는 훨씬 더 가능성이 적다.
 비용 문제도 있다. 책값은 14,000원(정가). 3000원짜리 편의점 도시락이 4개 하고 조금 남는다. 한 끼 식사값도 전전긍긍하는 우리네 청춘들이 과연 거금을 들일지? 차라리 도서관이라도 있으면 다행이다. 우리나라의 도서관 보급률은 형편없다. 다소 오래된 자료이긴 하지만, 2003년 OECD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장서 수는 핀란드(7.2권)의 1/10 수준(0.82권)이고 일본(2.53권)의 1/3에 못 미친다. 반면 도서관 한 곳 당 인구수는 OECD 평균(인구 5만 명 당 도서관 1관)의 두 배이다.
 결정적으로, 사람은 이성적이기보다 감성적인 존재이며, 사랑에 목말라 있다. 연애를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사람도 멜로 영화에 나타나는 사랑 이야기를 보고 기뻐하거나 눈물을 흘린다. '정류장' 속에는 사랑 이야기가 녹아있다. 띡히 뭐라고 묘사하진 않았지만, 노래를 듣는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이 느낌이 무엇인지 안다. 어렴풋라도 말이다.
 또 언어는 우리가 느끼는 것의 80%밖에 온전히 표현하지 못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차이는 더 확실해진다. 이성을 바탕으로 언어로 서술된 책보다, 감성을 바탕으로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음악이 훨씬 더 폭발력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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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거대하게 분석해놨지만, 본질적으로는 단순하다. '들으니 느낌이 좋다.'
ㅋㅋㅋ

Posted by 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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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르담 드 파리 오리지날 팀 내한공연(Eng.Ver)
2012년 2월 3일 PM 8:00 세종문화회관

생애 처음으로 '뮤지컬'이란 것을 보았다. 컴퓨터로 본 적이 있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자면 처음은 아니지만, 정식으로 공연장 가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내 지갑 사정을 고려해볼 때, 좀 부담스러운 가격이지만 마음 먹고 투자했고, 결과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그렇다면 왜 노트르담 드 파리였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친숙해서. 컴퓨터로도 처음 본 게 이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한국 번안작. 게다가 그랭구아르가 맨 처음 부르는 곡(번역 '대성당들의 시대')은 평소에도 친구들과 즐겨 부르기 때문에 더욱 익숙했다. 이미 닳고 닳도록 많이 본 매니아들은 '왜 프랑스어가 아니냐'라는 부분에 대해 무척 민감하게 반응했다. 프랑스어 자체가 가진 음악성이 없어진다나 뭐라나. 한두 사람이 그런 이야길 하는 건 아니었으니, 기회가 되면 프랑스어로 된 공연도 관람해야겠다. 아마 공연장 가서 보기는 힘들겠고, 인터넷을 찾아봐야할 것 같다.
 뮤지컬의 ㅁ자도 모르는 초짜들이었지만, 현장에서 직접 보면서 받은 인상은 정말 강렬했다. 오죽하면, 모였다 하면 노래방 가자고 하는 애들이 대뜸 '이제 우리 공연 보러 다닐래?'하고 제안했다(웃음). 동기 중에 한 녀석이 지나가는 말로 '뮤지컬에 한 번 빠지면 돈 아까운 줄 모르게 된다. 심지어 그거 보기 위해 알바를 뛴다.'고 했었는데, 그 심정을 알 것 같았다.

 좋은 공연들이 많을 텐데, 한 번 찾아봐야겠다. 그리고 좋은 뮤지컬도 많을 테다. 추천 받아서 쫓아다녀야지. 2012년의 새 취미로 '공연 관람'이 될 수 있을까? 두고 봐야 할 일이다(웃음).
Posted by 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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