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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찰'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3.01.29 나의 자아성찰환경에 대한 성찰

나는 자아성찰을 꽤 좋아하는 편이다(이런저런 사연이 있다.).

 성찰하기 가장 좋은 시간은 오후 10시~새벽 2시다. 그 이전엔, 아직도 분주함이 여기저기 묻어있거나 하루 마무리 수순을 밟고 있지 않는다. 대개. 그리고 2시 이후에는, 집중력도 떨어지거니와 다음날 생활에도 지장이 있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다. 가장 좋은 성찰환경은 고요한 내 방, 책상 앞이다.

 오늘, 오랜만에 성찰이 참 잘 되고 있어서 기쁘다(바로 지금 이 순간!). 하나하나 돌아보고 싶었던 부분들을 글로, 자유로운 형태와 방식으로 풀고 나니 참 개운하다. 그리고 자기 전 이 글을 적으면서, '성찰 환경'에 대해 인식하고 돌아보게 되었다.

 

 인식할 수 있는 최초의 성찰이 이루어진 건 초등학교 고학년 때. 그 환경에서, 이사가기 전인 중3 말까지 지냈다. 우리 동이 단지 끝에 있어 창문 너머가 후문 뚝방길이었고, 정말 조용했다. 차도 사람도 거의 안 지나다니고 키 큰 가로수들과 예쁜 꽃, 풀만 가득했다(지금 돌이켜보면 집 근처에 그런 좋은 장소가 있었다는 게 큰 행운이다. 꼭 방 안에서만 성찰한 게 아니라, 그 뚝방길에 반은 자연적으로, 반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산책로를 걸으면서도 사색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세 번 이사를 했는데, 그때가 가장 조용한 환경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언덕 도로를 올라가면 차들이 쌩쌩 달리기 때문에 소리가 안 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요했다. 가장 우울하고 힘든 시기를 가장 좋은 사색환경에서 보냈다는 게, 참 기묘한 일치다.

 

 그 다음으론 고등학생 시절과 대학교 1학년, 그리고 스물 하나의 절반을 보낸 고층집이 있다. 집에서 지하철역은 엎어지면 닿을 거리에 있었다. 다시 말해 대로 바로 옆이라서, 소음에 쉽게 노출될 수 있는 환경이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차 소리가 그렇게 크진 않았고, 무엇보다 내 방은 대로와 가장 멀리 떨어진, 단지 안을 넓게 조망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햇살이 잘 들어서 낮시간을 좋아했지만, 저녁시간도 그에 못지 않게 좋아했다. 책상 앞에 앉아 이것저것 숙제나 공부를 하다가 고개를 오른쪽으로 틀면, 불을 밝힌 각 세대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기 때문이었다. '다들 저 속에서 뭘 하고 있을까?'라는 생각은 기본이었다. 저녁시간대 모습을 기억해두었다가 새벽시간에 다시 밖을 보면, 극명하게 차이가 드러난다. 불이 켜진 세대가 거의 없다. 그때마다 '바쁘게 사는 것'이나 '밤이 주는 휴식'과 같은, 대비적인 주제로 글을 쓰곤 했다. 모의고사나 시험을 앞둔 새벽이면 더 밤에 젖어들었던 것 같다. 이 시기 이후로 밤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게 되지 않았나 싶다.

 

마지막으로 작년 하반기에 이사 온 지금의 환경이 있다.

 여기도 고층이라면 나름대로 고층이지만, 좀 애매한 높이다. 책상에서 이것저것 하다가 고개를 들면 바로 밖을 볼 수 있지만(창이 정면에 있다.), 배란다가 가로막고 있어 고등학생 때 성찰환경에 비하면 형편없다. 굳이 배란다로 나가 밖을 보면, 방이 도로 쪽이라 차들과 낮은 건물들만 보인다. 그다지 볼 게 없다. 그렇기에 한 가지 장점은 확실한 듯하다. 책상에서 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 한 가지 생각을 쭉 이끌고 가다가, 주변 환경을 보고 다른 생각이 유입되어 흐지부지 되는 일은 없다는 것.

 물론 지금 환경이 단점만 있는 건 아니다. 생각건대 이곳은 낮에 강점이 있다. 우선 해가 적당하게 잘 든다. 기분 좋을만큼 든다. 그래서 낮시간이 상쾌하다. 또한 낮에는 멀리 산이 보인다. 아득히 먼 것도 아니다. 딱 알맞게 잘 보인다. 기분전환하고 싶을 때마다 산등성이를 천천히 훑고 있으면, 방 위치가 매우 만족스럽다.

 

 성찰환경에 대한 성찰은 처음인데, 해보니 이런저런 추억도 떠오르고 참 좋다. 현재 장소에 대해 좀 더 애정을 가지고 인식하게 된 부분도 있고. 이후에도 이 글을 여러 번 수정하면서 더 '어루만지기'해야겠다.

 언제 또 어디로 이사를 가게 될지, 어떠한 사색 장소를 발견하게 될진 모른다. 다만 한 가지 확고한 바람이 있다. 자아성찰환경이 나에게 잘 맞아서, 성숙해가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길었다. 그만 자자.

 

Posted by 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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