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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료하고 심심한데 머릿속에 어떤 자극을 줄까 생각하다가, 책장에서 '손깍지'라는 책을 집어들었다. 고2때, 친구에게 선물받은, 걔네 학교 문학동아리 문집이다. 한 번 정독하고, 그 후에도 신선한 자극을 받고 싶으면 들여다보곤 한다. 나는 이걸 무척 특별하게 여긴다. 이유는 여러 가지.
 일단 '선물'이다. 그리고 '한정판'이다. 이걸 가지고 있는 사람은 당시 부원들과 나, 그리고 나처럼 선물 받은 사람들이 전부일 것이다. 희소성 있다. 또 여러 사람의 꿈이 담겨 있고 그들에게 아주 소중한 추억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도 고1, 고2때 교지(3학년 때 없어졌다..)를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 속에 얼핏 학교생활이 담겨 있고, 내 글이 실려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이런데 손수 그들의 정성으로 일궈낸 문집은 어떨까. 마지막으로, 풋풋하고 신선해서 좋아한다. 미숙하기 때문에 아름다워서 좋아한다.

 흔히 소설책을 보면 앞뒷면에 책 꽤나 읽고 공부 좀 했다는 분들이 작품에 대해 간략하게 평 해놓으셨고, '무슨무슨 상 수상'으로 '인증'한다. 책에 대해 잘 모르는 상황에서 선택할 때 큰 도움이 되긴 하지만, 그걸 믿고 선택한 뒤 결과가 갈린다. 어떤 책들은, 읽고서는 내가 학식이 짧은 건지, 아니면 그저 포장된 명성/인증인지 긴가민가한 것들이 있다. 게다가 그런 작품들은 읽으면서도 끊임없이 무언의 '해석의 압박'에 시달리기 때문에, 이해도가 떨어진다 싶으면 은근히 피곤해진다.
 고등학생들의 문집은 그런 점에서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에 참 좋아한다. 어떤 글에선 기성문인들을 따라하려는 시도가 엿보이거나, 힘주어 쓴 기색이 있지만, 그것마저도 참 귀엽게 다가온다. 조금 서투르든, 소질이 엿보이든, 어쨌든 자신만의 개성을 불어넣으려는 시도가 공통적으로 느껴지고, 또 '나는 누구인가'라는, 그 나이대에 당연한 고민을 투영한 흔적이 배어나기 때문이다(쓰다 보니 고등학생 시절을 오래 전 이야기하듯 서술해버렸는데, 몇 살 더 먹은 지금도 '나'는 그때와 많이 다르지 않다고 본다.). 이것 말고도 집에 모 대학교 문창과 졸업생들의 문집이 있는데, 전공이론에 바삭해서 그런지 '거리'가 느껴지기 시작하는 작품들이 많았다. 일반인과 문인 사이의 거리.

 
 여기 올라오는 글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페이스북에 올라갔다. 훨씬 짧게 압축되어서. 그러다보니 어려운 단어를 많이 사용했는데, 친구가 이를 보고 '현학적인데? 무슨 이야긴지 모르겠다. 초심으로 돌아가'라는 말을 남겼다. 그 뒤 늘 고민 중이었는데, 고등학생들의 글묶음에서 실마리를 찾았다.
 간결하게. 깔끔하게. 마음은 순수하게. 순진함도 약간 포함돼도 좋고.. 누구도 따라하지 말고, 나대로.
 한 가지 더. 내가 할 수 있는 고민과 생각을 투영해서 글을 짜는 것.
  되짚어보면, 내가 문청시절 가진 '작가의식' 속에는 '사회에 대한 시각/비판'이 들어가 있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보니 점차 부담스러워졌고, 펜을 꺾는 데 기여(?)했다(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는데. 문학교과서에 실린 작품들이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이거 잘 지키면서, 한편으론 문장다듬기 공부도 계속 한다면 좋은 글이 나올 수 있겠지?
 지금 내가 느끼는 산뜻한 기분이, 좋다.
 
Posted by 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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