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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하고서 할머니 댁을 찾아갔다. 집에서 출발하는 것보다 근무지에서 출발하는 게 더 가깝기도 하고, 복지관에서 돌아오신 뒤라 댁에 계신 까닭이었다. 두 달 전에 찾아갔었지만, 그새 길을 잊어버려 위성지도와 로드뷰로 검색했다.

 

 할머니가 사시는 곳은 몇 십년 전만 해도 힘차게 발전했지만, 지금은 쇠락한 동네다. 그때문인지 어렸을 적 풍경과 거의 일치했다. 달라진 게 있다면 길 양 옆으로 있던 사무실 건물들이 조금 바뀌었다거나, 리모델링을 해서 새로워진 집이 있다는 것 정도. 그리고 꼬마였던 내가 커져서, 길 폭이 좁아지고 벽이 낮아진 것처럼 느꼈다는 것.

 길을 걸으며 지난번과 같은 생각을 했다. 변한 게 없다, 생각보다 가깝다, 그런데 난 왜 이제서야 여길 찾아왔을까? 할아버지도 살아계실 때 왔으면 더 좋았을 걸. 아직 할머니라도 계셔서 다행이다. 더 자주 찾아봬야지.

 

 할머니는 저녁식사도 마다하시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데 집중하셨다.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 생각들, 어렸을 적 에피소드 등. 같이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할머니께는 큰 힘이 되는 것 같았다. 이젠 연세가 있으셔서 머리도 새하얗고, 거동도 불편하시지만, 이야기할 때만큼은 예전과 다를 게 없으셨다.

 한 시간 반 정도, 내내 이야기를 나누다가 작별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가는 길에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가, 가라앉았다가, 다시 튀어올랐다가, 잠잠해졌다. 이게 뭘까? 스스로에게 설명하려고 해도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는 이 느낌은. 앞으로 자주 찾아뵈면서 이 묘한 느낌을 좀 더 구체적으로 끌어내리라.

 

 가끔 할머니께 찾아가는 게, 본인은 물론 나에게도 정서적인 안정을 가져다주는 것 같다. 알게 모르게 큰 영향력을 미친다. 내 마음에.

Posted by 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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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아성찰을 꽤 좋아하는 편이다(이런저런 사연이 있다.).

 성찰하기 가장 좋은 시간은 오후 10시~새벽 2시다. 그 이전엔, 아직도 분주함이 여기저기 묻어있거나 하루 마무리 수순을 밟고 있지 않는다. 대개. 그리고 2시 이후에는, 집중력도 떨어지거니와 다음날 생활에도 지장이 있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다. 가장 좋은 성찰환경은 고요한 내 방, 책상 앞이다.

 오늘, 오랜만에 성찰이 참 잘 되고 있어서 기쁘다(바로 지금 이 순간!). 하나하나 돌아보고 싶었던 부분들을 글로, 자유로운 형태와 방식으로 풀고 나니 참 개운하다. 그리고 자기 전 이 글을 적으면서, '성찰 환경'에 대해 인식하고 돌아보게 되었다.

 

 인식할 수 있는 최초의 성찰이 이루어진 건 초등학교 고학년 때. 그 환경에서, 이사가기 전인 중3 말까지 지냈다. 우리 동이 단지 끝에 있어 창문 너머가 후문 뚝방길이었고, 정말 조용했다. 차도 사람도 거의 안 지나다니고 키 큰 가로수들과 예쁜 꽃, 풀만 가득했다(지금 돌이켜보면 집 근처에 그런 좋은 장소가 있었다는 게 큰 행운이다. 꼭 방 안에서만 성찰한 게 아니라, 그 뚝방길에 반은 자연적으로, 반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산책로를 걸으면서도 사색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세 번 이사를 했는데, 그때가 가장 조용한 환경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언덕 도로를 올라가면 차들이 쌩쌩 달리기 때문에 소리가 안 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요했다. 가장 우울하고 힘든 시기를 가장 좋은 사색환경에서 보냈다는 게, 참 기묘한 일치다.

 

 그 다음으론 고등학생 시절과 대학교 1학년, 그리고 스물 하나의 절반을 보낸 고층집이 있다. 집에서 지하철역은 엎어지면 닿을 거리에 있었다. 다시 말해 대로 바로 옆이라서, 소음에 쉽게 노출될 수 있는 환경이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차 소리가 그렇게 크진 않았고, 무엇보다 내 방은 대로와 가장 멀리 떨어진, 단지 안을 넓게 조망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햇살이 잘 들어서 낮시간을 좋아했지만, 저녁시간도 그에 못지 않게 좋아했다. 책상 앞에 앉아 이것저것 숙제나 공부를 하다가 고개를 오른쪽으로 틀면, 불을 밝힌 각 세대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기 때문이었다. '다들 저 속에서 뭘 하고 있을까?'라는 생각은 기본이었다. 저녁시간대 모습을 기억해두었다가 새벽시간에 다시 밖을 보면, 극명하게 차이가 드러난다. 불이 켜진 세대가 거의 없다. 그때마다 '바쁘게 사는 것'이나 '밤이 주는 휴식'과 같은, 대비적인 주제로 글을 쓰곤 했다. 모의고사나 시험을 앞둔 새벽이면 더 밤에 젖어들었던 것 같다. 이 시기 이후로 밤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게 되지 않았나 싶다.

 

마지막으로 작년 하반기에 이사 온 지금의 환경이 있다.

 여기도 고층이라면 나름대로 고층이지만, 좀 애매한 높이다. 책상에서 이것저것 하다가 고개를 들면 바로 밖을 볼 수 있지만(창이 정면에 있다.), 배란다가 가로막고 있어 고등학생 때 성찰환경에 비하면 형편없다. 굳이 배란다로 나가 밖을 보면, 방이 도로 쪽이라 차들과 낮은 건물들만 보인다. 그다지 볼 게 없다. 그렇기에 한 가지 장점은 확실한 듯하다. 책상에서 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 한 가지 생각을 쭉 이끌고 가다가, 주변 환경을 보고 다른 생각이 유입되어 흐지부지 되는 일은 없다는 것.

 물론 지금 환경이 단점만 있는 건 아니다. 생각건대 이곳은 낮에 강점이 있다. 우선 해가 적당하게 잘 든다. 기분 좋을만큼 든다. 그래서 낮시간이 상쾌하다. 또한 낮에는 멀리 산이 보인다. 아득히 먼 것도 아니다. 딱 알맞게 잘 보인다. 기분전환하고 싶을 때마다 산등성이를 천천히 훑고 있으면, 방 위치가 매우 만족스럽다.

 

 성찰환경에 대한 성찰은 처음인데, 해보니 이런저런 추억도 떠오르고 참 좋다. 현재 장소에 대해 좀 더 애정을 가지고 인식하게 된 부분도 있고. 이후에도 이 글을 여러 번 수정하면서 더 '어루만지기'해야겠다.

 언제 또 어디로 이사를 가게 될지, 어떠한 사색 장소를 발견하게 될진 모른다. 다만 한 가지 확고한 바람이 있다. 자아성찰환경이 나에게 잘 맞아서, 성숙해가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길었다. 그만 자자.

 

Posted by 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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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인가 이야기를 꺼내고 싶어서 '글쓰기'를 펼쳐놓고 있다. 그러나 정작 무엇을 쓸 것인지는 구체적으로 떠오르질 않는다. 한 편의 글을 엮어내고 싶은 마음만 있을 뿐이다. 오랜 시간, 하얀 화면에서 껌뻑이는 커서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지만 여전히 달라지는 건 없다. 아깝다. 이 상태에서 글감이 확실했다면 또 하나의 글을 남기는 건데 말이다.

 오랜만에 마주하게 된, 글쓰기 애매한 순간을 달래보려 이렇게 글을 남겨본다.

Posted by 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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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저녁에 버스를 타고 집에 가는데 라디오에서 뉴스가 흘러나왔다. 이것저것 하느라 지쳤던 나는 의사에 폭 파묻혀 듣는둥 마는둥 귀만 열고 흘려보냈다-

 1. 박근혜씨가 '감동을 주는 인물' 1호를 선정했다는 내용. 커피전문점을 운영하는 분으로, 청각장애인을 고용하여 함께 일하고 처우 개선에 노력... 뒤이어 새누리당 이야기. 감동을 주는 인물을 찾고 있다는 소식. 바로 그 다음, 당 소속 의원의 열정적인 연설 일부가 육성 그대로 흘러나왔다. "국민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아는, 감동이 있는...!(하략)"
 2. CJ그룹 이맹희 회장이 삼성 이건희 회장에게 재산상속 소송을 걸었다. 고 이병철 회장이 자기 몫으로 준 7000억대 주식을 이건희 회장이 자기 명의로 바꾸었다는 것이다. 자신은 이를 최근 알았으며, 다른 증여주식도 확인되는대로 추가 소송을 걸겠다고 밝혔다.
 3. 어린이집 소속 원장 및 교사 1000여 명이 처우 개선과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시위. 국립어린이집에서 10년 일해도 월180만원. 추가근무에 대한 수당도 없음. 사립은 더 열악하다고 한다.
 4. 제주도의 불법 신종변태업소 적발. 1년 간 이용객 700여 명. 1차로 추린 상습이용자 45명 중 21명 공무원. 고위직 다수. 다른 지방에서 업무차 혹은 휴가차 온 공무원들도 포함되어 수사가 확대될 듯하다.
 지쳐서 아무 생각 없이 그냥 귀만 열고 있었는데도, 생각이 '꿈틀'했다.

 '감동'을 부르짖는 여당. '새 세상'이라는 뜻으로 이름을 바꾸고 그들이 표방한 건 '감동'.
 7000억짜리 재산 싸움을 벌이는, 우리와는 다른 종족인 재벌집.
 10년 일해도 월 180 받는 게 서러워서 거리로 뛰쳐나온 우리 이웃들.
 신종변태업소를 찾아 억눌린 성욕을 국민의 돈으로 풀어대는 '공정사회'를 표방한 정부의, 공직자들..

감동적이다.. 이 부조리극.
이 극본을 쓴 데에는 꼭 여당만 관여한 것도 아니고, 야당의 단독 작품도 아니다. 정치인들만의 스페셜 무대도 아니다. 우리 모두가 조금씩,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단지 '영향력'에 따라 책임감의 경중이 다를 뿐..
우리 사회는 이미 충분히 감동적이다. 그런데 이런 종류의 감동은 싫증날 때가 되지 않았나? 우리가 소원하는 진짜 감동이 뭔지 깨닫고, 하나하나 바꿔나갈 수 있기를 소원해본다.
Posted by 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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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료하고 심심한데 머릿속에 어떤 자극을 줄까 생각하다가, 책장에서 '손깍지'라는 책을 집어들었다. 고2때, 친구에게 선물받은, 걔네 학교 문학동아리 문집이다. 한 번 정독하고, 그 후에도 신선한 자극을 받고 싶으면 들여다보곤 한다. 나는 이걸 무척 특별하게 여긴다. 이유는 여러 가지.
 일단 '선물'이다. 그리고 '한정판'이다. 이걸 가지고 있는 사람은 당시 부원들과 나, 그리고 나처럼 선물 받은 사람들이 전부일 것이다. 희소성 있다. 또 여러 사람의 꿈이 담겨 있고 그들에게 아주 소중한 추억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도 고1, 고2때 교지(3학년 때 없어졌다..)를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 속에 얼핏 학교생활이 담겨 있고, 내 글이 실려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이런데 손수 그들의 정성으로 일궈낸 문집은 어떨까. 마지막으로, 풋풋하고 신선해서 좋아한다. 미숙하기 때문에 아름다워서 좋아한다.

 흔히 소설책을 보면 앞뒷면에 책 꽤나 읽고 공부 좀 했다는 분들이 작품에 대해 간략하게 평 해놓으셨고, '무슨무슨 상 수상'으로 '인증'한다. 책에 대해 잘 모르는 상황에서 선택할 때 큰 도움이 되긴 하지만, 그걸 믿고 선택한 뒤 결과가 갈린다. 어떤 책들은, 읽고서는 내가 학식이 짧은 건지, 아니면 그저 포장된 명성/인증인지 긴가민가한 것들이 있다. 게다가 그런 작품들은 읽으면서도 끊임없이 무언의 '해석의 압박'에 시달리기 때문에, 이해도가 떨어진다 싶으면 은근히 피곤해진다.
 고등학생들의 문집은 그런 점에서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에 참 좋아한다. 어떤 글에선 기성문인들을 따라하려는 시도가 엿보이거나, 힘주어 쓴 기색이 있지만, 그것마저도 참 귀엽게 다가온다. 조금 서투르든, 소질이 엿보이든, 어쨌든 자신만의 개성을 불어넣으려는 시도가 공통적으로 느껴지고, 또 '나는 누구인가'라는, 그 나이대에 당연한 고민을 투영한 흔적이 배어나기 때문이다(쓰다 보니 고등학생 시절을 오래 전 이야기하듯 서술해버렸는데, 몇 살 더 먹은 지금도 '나'는 그때와 많이 다르지 않다고 본다.). 이것 말고도 집에 모 대학교 문창과 졸업생들의 문집이 있는데, 전공이론에 바삭해서 그런지 '거리'가 느껴지기 시작하는 작품들이 많았다. 일반인과 문인 사이의 거리.

 
 여기 올라오는 글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페이스북에 올라갔다. 훨씬 짧게 압축되어서. 그러다보니 어려운 단어를 많이 사용했는데, 친구가 이를 보고 '현학적인데? 무슨 이야긴지 모르겠다. 초심으로 돌아가'라는 말을 남겼다. 그 뒤 늘 고민 중이었는데, 고등학생들의 글묶음에서 실마리를 찾았다.
 간결하게. 깔끔하게. 마음은 순수하게. 순진함도 약간 포함돼도 좋고.. 누구도 따라하지 말고, 나대로.
 한 가지 더. 내가 할 수 있는 고민과 생각을 투영해서 글을 짜는 것.
  되짚어보면, 내가 문청시절 가진 '작가의식' 속에는 '사회에 대한 시각/비판'이 들어가 있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보니 점차 부담스러워졌고, 펜을 꺾는 데 기여(?)했다(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는데. 문학교과서에 실린 작품들이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이거 잘 지키면서, 한편으론 문장다듬기 공부도 계속 한다면 좋은 글이 나올 수 있겠지?
 지금 내가 느끼는 산뜻한 기분이, 좋다.
 
Posted by 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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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하는 <글쟁이 유형>과 그 수
1:일상에서는 누구나, 정말 짧은 것이라도, 글을 쓴다.
2:노력을 기울여 쓰는 사람도 많다.
3:재미로 쓰는 사람도 많다(글이 주는 즐거움에 푹 빠져 '미친듯한' 사람도 꽤 많다).
4:작가가 되겠다고 단련하는 사람도 꽤 많다. 특히 요즘들어 더 증가하는 추세다.
5:하지만 잘 쓰는 사람도, 재능 있는 사람도 널리고 널렸다.
6:노력으로 달필이 되는 사람들이 있다. 많지 않다.
7:천재들이 있다. 노력 없이도 어느 정도 뛰어난. 드물다.
(*업무나 학업 때문에 글 쓰는 건 제외)

 중고등학교 시절, 작가가 되겠다고, 정말 미친놈처럼 글을 쓰고, 달리고, 즐길 때, 나는 123을 포함해 4번까지였다. 그리고 5번에 대한 열등감에 어느 정도 사로잡혀 있었고, 지향점은 6번이었다.
 지금은? 3번. 굳이 이전처럼 치열하게 쓰지 않는다. 생각하지도 못했던 새로운 분야가 내 삶 속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작가가 더이상 장래희망이 아니다. 그리고 설령 목표로 설정한다 치더라도 '잘 쓰는 사람들'과 '재능 있는 사람들'을 의식하며 나를 혹독히 단련시킬 게 뻔하다. 몇 년을 그래왔는데 그 습관이 어디 가겠는가. '작가의식'이라 칭했던 글에 대한 열정은, 이전만큼 불타오르진 않는다. 그때문에 매일같이 글을 올리던 블로그(네이버)를 닫아 버렸다(개인적인 이야기들이 너무 많아서도 문제였지만.). 블로그를 관두고 나서 글쓰는 유형이나 생각의 깊이 등 많은 부분들이 변했다. 그러나 글을 좋아한다는 것, 그거 하나만큼은 같았다.
 펜을 꺾기로 결심하고 주변 친구들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했을 때, 생각보다 많은 친구들이 거듭 만류했다. 특히나, 글 쓰겠다고 덤비기 이전부터 날 알아온 애들도(예전에도 특정 몇 개 분야에 불타올랐다가 관둔 적이 있었다.)'왜 그러느냐'고 심지어 따지기까지 했다. 흉금을 터놓은 친구 누굴 만나든지. 그래서 당황스러웠다. 만류, 따지기 같은 격한(?)반응은 예상에 없던 것이었기에. 한결같이, 친구들은 되려 내 반응을 보고 '?'라는 표정을 짓곤 했다. 어떤 친구에게 듣기로, 심지어 국어학원 선생님까지도 내가 펜을 꺾었단 이야기를 듣고 몹시 아쉬워하셨다고 한다. 아니, 나 달필 아닌데. 그냥, 좋아서 조금 미쳤었을 뿐인데. 열심히 하려 하지만 어딘가 어설픈 부분이 잔뜩 있는 그런 글쟁이였는데. 
 '어쨌든 모두들 고맙습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감사와 의문이 뒤섞인 명제를 머릿속 한구석에 새겨놓고, 살았다.

 그리고 얼마 전, 내가 속한 청소년단체에서 '블로그'를 전략적으로 활용하기로 하면서 내 이력이 쓰임 받게 되었다. 3주 정도 준비했다. 준비기간동안 그거에 몰두하느라 다른 일에 조금씩 지장이 있었다. 별로 바람직한 모습은 아니지만, 한편으론 옛날 생각과 열정이 되살아나서 흐뭇했다. 강의 목적은 '블로그를 시작하게 하기'. 그래서 "너희들도 할 수 있단다. 해보렴"이라는 메시지가 남을 수 있도록 준비했다.
 강의 당일. 평소에 친구들에게나 치는 '드립'도 섞어가면서 열심히 진행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내 이야기를 꺼냈다. 순간 속에서 불이 확 올라왔다. 흥분해서, 조금 화난 듯 이야기했다. 덕분에 핀트가 좀 흐려지고, 횡설수설하게 됐다. 어떤 애들이 보면 내가 화내는 거라 오인했을 수도 있을 정도로 감정적으로 고조됐었다(웃음).
 강의 마치고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애들이 강의로 얻은 것보다, 내가 깨달은 게 더 컸다고 단언할 수 있다. 속에서 활활 타오르던 불. 그래. 그냥 좀 지쳤을 뿐이었다. 붙이기만 한다면 얼마든 다시 타오를 수 있다. 그 사실이 놀라웠다.
 발견 뒤. 블로그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 구상하고, 티스토리 초대장을 얻어 이곳 '건너편 산 정상..'을 개설했다. 프로필에도 간략히 소개되어있지만, '건너편 산 정상' 이미지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룰 예정이다.
 블로그를 열고 난 뒤, 매일같이 만나는 친구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예전에 네이버에서 블로그를 할 때도, 지금 싸이월드에 아주 드물게 올라오는 글도 꾸준히 읽는 녀석이었다. 그가 대뜸 이렇게 말했다.
 "오 진짜? 잘 됐다. 네 글 읽는 거 재밌어."
  블로그나, 미니홈피나, 페이스북이나, 어쨌든 사람에게 노출되는 데 의의가 있다면, 독자 없이는 아무 의미가 없다. 재미도 없고. 그렇기에 녀석의 한 마디는 좋은 촉진제가 되었다. 그리고 고정독자 한 명 확보!라는 점에서도 힘이 나고, 우와, 재밌다니(웃음). 그것보다 좋은 말이 어딨겠는가.

 티스토리의 새살림, 이 공간에서, 또다른 삶의 깊이와 재미 그리고 이외 모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들을 발견할 수 있기를 기원해본다.
 고맙다 친구야.
Posted by 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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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상'카테고리에 올라오는 토막글들은 제 페이스북에도 똑같이 올라갑니다. 아직은, 새살림인 이 블로그를 공개하기가 허전하기도 하고, 네이버 블로그의 향수가 남아 티스토리가 낯선 부분도 있습니다. 게다가 '제대로 쓰기 시작했다'고 느끼는 부분이 이것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새 공간이 읽을거리 볼거리를 갖추게 되면(=무르익으면)공개할 예정입니다. 어차피, 관심 있는 소수의 사람들만 올테니 그들의 고생(?)에 보답하고자 좀 더 맛있고(멋 아닙니다. '맛'입니다.)매력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하거든요.

 저녁에 밖에 나갈 일이 있어, 집을 나서기 전에 페이스북에 단상 2번(삶의 자취, 그리고 궤적)을 올리고 몇 시간 뒤에 돌아왔습니다. '짧은 생각'에 불과했지만 한편으론 무척 마음에 들어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나 궁금했거든요. 돌아와서 보니 동의/공감을 표시할 수 있는 '좋아요'가 6개. 방금 저도 눌렀으니 7개가 되었네요.
 바깥을 돌아다니면서 어느 순간 흐뭇하게 미소지었습니다. 내 머릿속에서만 웅웅거리는 '생각'이란 게 드러날 수 있다는 점, 그래서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이 만족스러웠기 때문이죠.
 또한, 그 미소 속에는 너털웃음도 조금 섞여 있었습니다. 생각도, 인터넷도, 눈에 보이지 않는 건데. 지역, 국경 같은 공간제약을 초월해서 순식간에 서로를 이어준다니. 정보화가 너무나 익숙한 환경에 놓여있기 때문에 이게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느끼는 건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웃음).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릴 때, 하늘을 쳐다봤습니다. 손에 잡히지도, 눈에 보이지도 않는, 공기. 또, 먼지, 분진. 전파. 인터넷과 그 플랫폼 위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활동들. 페이스북 친구들에게 노출되어 있을 머릿속의 생각. 언뜻 들으면 비현실적이지 않나요? 그런데 현실이고, 생활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문득 무선전신이 떠오릅니다. 관련된 정보를 찾아봐야겠습니다. 아니 정확히는, 마르코니에 대해서. 이런 세계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움직여 일구어낸 사람이니까요.

Posted by 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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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개는, 시간이 확 많아지면 이를 어떻게 쓸지 몰라 방황하다가 헛되게 흘려보내곤 합니다. 마치 남의 일인양 객관화해서 이야기하는 저도, 똑같습니다. 방학이 시작된지 꽤 됐고, 이젠 학교로 돌아갈 채비를 슬슬 해야 할 때인 요즘도 '오늘은 참 부질없이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날을 보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루종일 무력하게 보냈다 하더라도, 24시간 중 짧은 순간이나마 또렷한 '자취'를 남겼다는 생각이 들면, 그날은 결코 그저 흘러간 날이 아닙니다. 하나하나의 자취가 모여 '삶의 궤적'을 완성해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기하게도 이 자취들은, 머릿속에선 잊어버려도 시간의 흐름 속에선 되살아납니다.
 때로 어떤 자취는, 현재 자기가 생각하는 궤적과 전혀 연관성 없게 느껴질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를 지워버리거나 덮어버리진 말아야 합니다. 시간이 흐르다보면 어느 순간, 다른 부분들과 잇닿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신비(*저는, '인도하심'이라 표현합니다만.)는 이성이나 논리로는 달리 설명할 방도가 없습니다. 다만 자취끼리 연결되어 궤적의 한 부분을 차지했을 때야 비로소 납득할 수 있습니다.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작품에서 'Carpe Diem!'이라는 말이 나왔고, 주변에서 흔히들 이야기합니다. 삶의 아주 사소한 것에도 충실해서 매일매일 작은 자취를 남길 수 있다면, 여러분에게 주어진 삶의 궤적은 더욱 뚜렷해지고, 풍성해지고, 세세해질 것입니다.

Posted by 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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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레오나르도 다 빈치, 스티브 잡스, 바흐.. 각자의 분야에서 한 획을 그은 위인들. 이들은 '한 명'입니다.
2. 흔히, 희망을 가지는 데는 주저하지 않지만 이를 어떻게 해보려는 움직임에는 인색합니다. 그리고 실현되는 시간을 기다리는 데는 더욱 인색합니다. 하나의 씨앗이 자라기 위해선 좋은 토양과 적당한 물과 햇빛, 무엇보다도 시간이 필요한데, 무엇인가 해보려 움직이는 사람들도 얼마 안 가 당장 눈에 보이는 것이 없다는 잣대로 짓밟고 떠납니다.
 포기하지 않고 품는다면, 처음엔 보잘 것 없는 작은 씨앗이 조금씩 조금씩 자라 뿌리가 깊어지고, 그늘이 드리워지고, 마침내는 모두가 찾는 쉼터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쯤이면, 이미 어디선가 또다른 씨앗이 뿌려져 새로운 희망이 자라나고 있을 것입니다.

Posted by 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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