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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 연예인아!"

 

 요즘 친구들이 나를 지칭하는 말이다. 이 호칭을 들은지 몇 달 되었다. 처음엔 '뭐가 연예인이라는 거야?' 싶었지만, 요즘엔 수긍하고 있다. 그다지 바쁘지 않을 것 같은데 여기저기 참 바쁘게 돌아다닌다. 아침에 나가서 집에 들어오면 통상 10시, 11시. 방을 치우고 싶어도 집에 오면 피곤해서 바로 씻고 잠들게 된다. 다음날 새벽이면 새벽기도 가느라 일찍 집을 나선다.

 이렇게 바븐지도 모르다가, 며칠 전에 친구들이 하루 일정을 이야기 해달라고 했을 때 비로소 바쁘다는 걸 인지하게 되었다. 방에서 푹 쉬고 있는 지금, 이러한 새로운 인식이 조금 당황스럽다. 내가 이렇게 바쁠줄이야. 2주 뒤에 군사훈련 받으러 논산 가는 것도 실감이 나질 않는다. 그냥 이렇게 바쁜 와중에 시간 가다가, 훈련소에 뚝 떨어질 것 같다. 그때 정신상태는 괜찮으려나 모르겠네. 너무 극과 극인 환경이니.

 

 서원한 것은 그럭저럭 잘 지키고 있다. 지난 7년 간의 관습과 관성 때문에 힘들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정말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1월달에 집중해서 변화시키기로 한 습관은 '절반의 성공'이다. 2월달은 훈련소에 있으니 아무래도 그 부분에 대해서 고민해볼 필요가 있겠다.

 남은 1월도 알차게 보내서, 행복한 마무리가 될 수 있길 바라본다.

Posted by 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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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지'를 적극적으로 쓰기 시작한 건 고등학교 2학년 때가 처음이다. 엄청 좋아하는 친구에게 '서프라이즈!'를 선사해줄 생각으로 시작했다. 거기에 맛들려서 약 2년을 열심히 썼다. 시간이 흐르며 대상도 그 친구 한 명에서, '친하고 아끼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 대부분'으로 확대되었다.

 

 그리고 작년 하반기부터 편지쓰기가 시들해졌다. 이런저런 사연들이 있지만 그걸 곱씹자니 마음만 아플 것 같고, 파고파고 들어가면 부정적인 요소만 잔뜩 드러날 것 같다. 하여튼 수그러들었는데, 그 중 하나가 편지쓰는 것에 대해 무서움을 느꼈던 까닭이다. 무슨 무서움이냐면?

 컴퓨터 하드디스크나, 책장이나, 클리어파일을 뒤지다보면 가끔 쓰다만 편지나 써놓고 보내지 않은 편지들이 등장한다. 종이 위에 고정된 시간이 활자화되어 녹아있다. 대부분은 '그땐 이랬네.'나 '여전하네, 이런 부분은.' 같이 좋은 추억과 감정을 고양시키는 내용이지만, 어떤 편지는 마음이 아프기도 하다. 수신자가 당시엔 사이가 좋았다가 지금은 확 틀어진 친구라거나, 꼭 말하고 싶었던 내용이지만 시기를 놓쳐 말하기도 애매한 것이라거나.. 하는 것들.

 이것들을 보며 나는 내가 보냈던 수많은 편지와 내용들에 대해 되새기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이를 다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 현재는 그때와 정반대의 생각, 감정을 가지고 있을수도 있다는 사실, 무엇보다 상대가 그 글을 보관하고 있으며 원하면 다시 꺼내어 볼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무서움을 느꼈다. 말에는 분명히 책임이 따른다. 그런데 그 책임을 질 수 없는 경우가 편지글에선 꽤 치명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편지를 열심히 쓰던 시절, 나는 시간이 막대하게 걸려도 '상대에게 이만큼 시간을 할애한다는 건 좋은 일'로 생각하고 기쁘게 헌신했다. 그러나 이제는 좀 머뭇거리게 되고, 내용도 훨씬 보편적이게 되고, 짧아졌다. 위에서 말한 '변화의 가능성'과 '책임' 때문이다. 내용이 상당히 간결해졌다는 점에선 고무적이지만, 왜일까. 과도기라 그런지 요즘은 '편지쓰기' 행위 자체가 많이 혼란스럽다.

 

 이제 나는 편지에 '뿌리'를 담아내는 연습을 해야겠다. 그래야 세월 속에서 어떤 변주가 이루어지더라도 나의 편지가, 내용 대부분이 유효할 테니까.

Posted by 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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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금, 얼마 전에 새로 산 책을 다 읽었다. 좋아하는 작가의, 관록이 묻어나는 책이라 그런지, 두께에 비해 단숨에 읽은 느낌이다. 출판정보 쪽까지 다 읽고 탁 덮은 뒤, 책장에 비집어 넣었다. 그러면서 서가를 눈으로 훑어봤다. 요새 청소년이고 성인이고 책을 안 읽는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독서 애호가는 수없이 많다. 양질의 독서를 하는 고수들도 주변에 널려 있다. 그런 사람들에 비하면 나는 아직 걸음마 수준이라 할 수 있겠다. 들은 것은 많은데, 심도 있게 훑으면 말문이 막혀버린다. 그렇다고 해서 건성으로 읽는 것도 아닌데. 다만 직접 읽어보지 못한 고전이나 유명한 책이 많을 뿐이다(말은 항상 청산유수. 그나저나, 도서관이나 얼른 찾아봐야 할 텐데.)

 책장에 얌전히 혹은 어지럽게 배열된 책무리를 다시 훑었다. 대부분은 읽었지만, 사놓고 읽지도 않은 책도 조금 보이고(!), 읽다가 이런저런 핑계 대면서 다 못마친 책, 중도에 던져버린 책, 두번세번 읽고도 아직도 난해한 책, 지금 다시 읽어도 정말 재밌는/좋은 책 등등 그 종류도 무척이나 다양하다. 책장을 조심스레 닫자 그네들은 유리장 너머에서 자기 위치를 지켰다. 영화를 보려고 컴퓨터를 켰는데, 문득 무슨 말인가 쓰고 싶어 또 '등산일지'를 적는다.

 

 나는 책은 그럭저럭 읽는다. 많이 읽지도, 그렇다고 적게 읽지도 않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내용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편이다. 관심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읽을 땐 집중해서 열심히 읽는데, 시간이 지나고 누군가 내용을 물어보면 대개 '잘 모른다'라고 답할 수 밖에 없다. 심지어 방금 읽고 덮은 책도(좀 추상적인 내용이긴 했으나)요약해서 말해달라 하면 조금 막힌다. 독서코칭이라도 받아야 하나?

 세 번을 읽었는데도 머릿속에 아무것도 남지 않아있는 사회과학 서적, 한 번 읽고서 긴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 작품, 볼때마다 새로운 작품.. 천차만별이다. 특히 거듭해서 읽어도 아무 기억에 남지 않는다는 건 참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난 책을 읽을 당시엔 주로 주인공의 감정에 집중하고 이입해서 본다. 그리고 남는 것 또한 감정의 흐름이다. 내용을 뚜렷이 기억하는 책을 되짚어보면, '감정'이 스토리라인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작품들이다. 이걸 강점으로 활용할 수는 없을지?

 

 우와. 이 글은..글이 아니다. 그냥 독백이다. 내가 무슨 이야길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 그래, 혼란스러운 정신상태를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나. 두서없는 독백은 이 정도로 접어두고, 일단 근처의 도서관부터 찾아보자. 아직 읽고 싶은 책이 많다.

Posted by 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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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가조치로 군대에서 돌아온 뒤, 조용히 지내고 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회복'도 겸하고 있다. 입대 전에 싹 다 정리하고 마음가짐도 다잡고 했는데, 돌아와버렸으니 허탈함이 여간 큰 게 아니었으니. 어쨌든 재신검+재입영 전까지는 복학도, 입대도 할 수 없기 때문에 '휴가' 혹은 '재도약' 기간으로 생각하고서, 서서히 생활을 잡아가는 중이다.

 생활의 기틀을 잡아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은, 다름아닌 글쓰기이다. 스스로가 봐도 참 역설적이다. 입시 실패와 여러 사연으로 '글은 그저 취미수단'으로 생각하고 이전만큼 치열하게 쓰지도 않는데. 간혹 글쓰기를 지양하는 마음도 들곤 하는데(글을 위험하게 '휘둘렀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데 회복의 기틀이다. 너털웃음이 나온다.

 그렇다면 어디서 글쓰기에 다시 자극을 받았던가, 되짚었다. 첫번째는 일기다. 입대 선물이라고 왕틴들이 돈을 모아 케이크와 일기장을 선물해주었다(선물은 동갑내기 친구가 고민고민하다가 기도하고 골랐다는데, 나도 모르게 내게 필요했던 것이었다. 할렐루야!). 가격을 떠나서, 굉장히 쓰고 싶게 생긴 일기장이다. 표지나, 속지나. 무게감도 적당하다. 게다가 이건 무슨 일이 있어도 집(혹은 그에 준하는)에서 쓰기로 정했기에, 독자를 최소한으로라도 의식하며 썼던 것과는 달리 정말 진솔하게 내면을 바라볼 수 있다.

 두번째는, 얼마 전 본 근대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의 영향이다. 극 전반에 걸쳐 시인으로서의 고뇌가 짙게 드러나있다. 자랑스럽게 내놓을 정도는 못 되지만, 소설을 써본 경험이 있어서 고뇌에 공감했었다. 당시 시대상까지 덧입히면, 아마 나와의 것과는 급이 달랐으리라. 또한, 모든 남자 주연들이 '시는 나에게 무엇인가'라는 가사가 들어간 곡을 부르는 장면이 몇 번 있는데 그게 깊게 뇌리에 남았다. 고등학교 시절 문학소년이었던지라, 그 자문에 대해 같이 가슴 뛰었던 기억이 난다. 연극은 8월 중순에 끝났지만, 여운은 아직까지도 남아있다.

 세번째는, 독서다. 요즘 김연수님 신작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을 읽고 있는데, 역량 있는 작가라 그런지(<세계의 끝 여자친구>를 꼭 읽어보시길!)순식간에 1/3을 읽었다. 그러면서 드는 충동 '나도 이런 읽을만한 이야기 하나 쓰고 싶다'. 꼭 김연수님이 아니라도 잘 쓴 이야기, 맛있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그런 충동이 든다. 아마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문청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증세 아닐까?

 

 여차저차한 이유가 나열되어 있지만, 근본적으로 '버릇'이 되어버렸기 때문이 아닐런지. 제버릇은 남 못 준다고, 중고등학교 4년간 치열하게 글 하나 바라보며 살았던 문청시절의 선연한 흔적이, 지금까지도 살아 숨쉬는 것이라 생각한다. 결국은 떼어놓질 못하는구나, 글쓰기를.

 글쓰기는 늘 어렵지만 또 좋고, 재밌기도 하다. 늘 첫대면 같다.

Posted by 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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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사에서 사무보조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요즘. 직장생활이 어떤 건지 어깨너머로, 눈대중으로, 육감으로 많이 배우고 있다. 내가 맡은 업무는 '필요한 일'이긴 한데 '굉장히 민감한' 것이다. 나는 일개 아르바이트생이기 때문에 성실히 할 일 하고, 보고 잘 하고, 일처리 잘 하면 된다. 책임자는 따로 있기 때문에 대개 분쟁은 상인들과 윗선 사이에서 일어난다.

 한편, 그렇다고해서 책임이 아예 없거나, 회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나도 생각이 있고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중간에서 신중히 융통성을 발휘하거나, 분노가 분쟁으로 이어질 소지를 미리 잠재우곤 한다(이 문장을 적는데 몇몇의 얼굴이 스쳐지나간다. 에휴. 잘 풀려서 다행/아직도 꿍해서 피곤. 그 둘 중의 하나다.).

 

 오늘, 사무실에 이례적인 일이 있었다. 내 자리는 사무실 제일 안쪽이라 다른 부서에 비하면 조용한 편인데(소리가 잘 울리는 구조이긴 해도 말이다.), 입구에 있는 민원실에서 누군가가 분노했다. 여기까지 고래고래 큰 고함소리가 들릴 정도로. 지난번엔 스무 명 정도가 단장실까지 침투하려 했다는데 그땐 자리에 없었다. 그래서 이런 돌발상황은 처음 겪는 일이었다. 학창시절의 영향으로, 분노에 찬 고함소리를 들으면 가슴이 벌렁거리기 때문에, 몹시 불안해졌다(겉으론 무표정하게 자리에서 일을 하고 있었으니 아무도 모르셨겠지만.). 부서 직원들도 술렁였다.

 몇 번 더 고성이 들리더니 점점 소리가 가까워졌다. 분노를 사그러뜨리려 노력하는 어느 중년 남자가 보였다. 그는 부서 직원 중 한 명의 팔짱을 (억지로)끼고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내가 하는 일을 담당하는 차장님 이름을 불러대며 금방이라도 싸울 기세로 으르렁거렸다.

 많이 차분해진 상태로 대화가 시작되었지만, 고성은 여전했다. 만일 조사업무 때문에 올라온 거라면, 실제로 돌아다니는 나까지 엮여 더 큰 문제가 될 수도 있겠다고 판단했다. 바로 자리를 떴다. 그리고 옥상에 올라가 가볍게 산책을 하고, 시간을 보냈다.

 

 맑은 하늘을 보다가 그 중년 남자의 일그러진 얼굴이 떠올랐다. 아니, 그뿐만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의 얼굴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싸우는 사람들의 얼굴이. 그르렁, 으르렁, 캬악... 다들 이상한 괴성을 내고 있었다. 아마 내가 기억하는 그들의 언어가 혼잡해져서 그렇게 되었으리라. 기괴하고 이상한 광경이었다.

 그런데 일순간 그 모든 얼굴이 흐물흐물 녹아내렸다. 그리고 여러 광경이 펼쳐졌다. 아마도 자식들일 아이들과 함께 함박웃음을 지으며 끌어안고 있는 모습. 아마도 아내일 여자와 둘이 끌어안고 행복해하는 모습. 아마도 남편일 남자와 함께 TV를 보며 하하 웃는 모습.

 

 "애틋함"

 내가 그 순간 느낀 감정이었다.

 

 결국은 다들 안정되고, 사랑받기 위해 이를 악물고 하루를 살아간다.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으로 차장님을 찾아온 중년남자도 집에 가면 아내와 자식들이 있을 것이다. 차장님에게도 아내와 아이들이 있다. 나도 집에 들어가면 한 가정의 장남이며, 내가 상대하는 상인들은 집안의 가장이다. 모두 소중한 사람들이고, 행복해지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는 것이다. 서로 사실을 조금만 인지해준다면, 너무 각박하게 돌아가지는 않을 텐데. 무한경쟁사회에서 먹고 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것일까?

 

 오늘도 하루가 저물어간다.

Posted by 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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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락 잘 안하는 내 습성을 고치고자, 멘티들에게 문자를 돌렸다. 야자 때문에 다들 11시가 넘어서야 답장이 왔다. 한 명 한 명 붙잡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누었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전화로 한다는 게 정말 아쉬웠다. 아웃팅 한 번 해야지.
 통화를 마치고 책상을 정리하는데 문득 '야자'에서 생각이 머물렀다. 참 많은 풍경들이 차례차례 지나갔다. 그 가운데 느끼는 건 '따뜻함'이었다. 뭐가 야자를 '따뜻하게' 기억하도록 만든 걸까? 생각은 꼬리를 물고, 새로운 생각을 뿜어냈다.
 언론이나 대중적인 인식을 보면 야간자율학습은 강제라는 인식이 강하다. (하기 싫은)공부를 억지로 심야까지 남아 해야 하는 고역이라니. 공부하기 좋아하는 학생이 드물다는 걸 감안하면 정말 끔찍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 학교는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늘 야자 신청인원이 수용인원을 넘어섰고, 따라서 자리다툼이 치열했다. 야자 담당 선생님들은 매번 고생이 많으셨다. 결석이나 도망으로 오점이 생긴 애들이 야자 빼지 말아달라고 매달리는 통사정 들어야지, 못 들어간 애들은 자리 나면 자기한테 달라고 부탁 또 부탁을 하지.. 이런 분위기 속에서 2,3학년을 보냈기에 야자에 대해 '강제'라는 이미지가 없었다.
 그리고 나는 '야간자율학습'이라는 의미에 정말 충실했다. 내가 하고 싶은 공부(대개 문학)를 자율적으로 했다. 수능대비공부가 안 되는 날이면 망설이지 않고 소설이나 시집을 꺼내 읽거나, 생각나는대로 글을 썼다. 피곤하면 엎드려 잤다(선생님들이 깨우셔서 중간에 일어나긴 했지만). 자유롭게 산책했다. 학교 건물 안을, 밖(운동장)을. 야자실 전체의 고요함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데 집중하기에 최적의 환경이었다. 수능이나 모의고사, 중간기말고사가 가까워질 때 생기는 특유의 긴장감은, 어느 하나에 좀 더 치열하게 몰두할 수 있는 좋은 조건이었다.
 마지막으로, 끝나고 돌아가는 시간이 무척 좋았다. 우리 학교는 9시와 11시 반 이렇게 두 번의 귀가시간이 있었는데, 나는 대개 11시 반에 가곤 했다. 11시 반을 몇 번 치러낸 사람은 알 것이다. 30분이 가까워질 무렵부터 여기저기서 분주히 나는 바스락바스락 소리와, 곧 집에 간다는 무언의 분위기와 표정들을. 그 순간의 야자실 분위기를 무척 좋아했다. 오히려 그때, 끝났을 때보다 더 많은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집으로 향하며 즐겁게 이야기 나누는 것도 사랑했다. 조금 과장해서 이야기하자면, '전우애'를 느꼈다고나 할까? 긴 시간, 함께 야자를 거쳐 각자 집으로 돌아간다. 내일이 되면 또 학교에 오고, 야자를 치르게 된다. 그런 동질감이, 우리들 사이에는 있었다.
 그래서 야자를 생각하면 따뜻하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 야자를 하고 싶을 때도 있다. 수험생이라는 신분은 끔찍했지만, 야자를 할 때는 수험생활 중에 가장 행복한 순간이 아니었나 하고 회상한다.

 글을 마치는 지금은 12시 18분. 몇 년 전에도 야자를 마친 뒤 이 시간에 이 짓(일기쓰기)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_달라진 거라면 대학생이 되었다는 것과, 이제는 야자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는 점 등등 많은 것이 변했다. 고등학교 생활 언제 끝나나 싶었는데 벌써 이렇게.
 아, 세월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는다더니.

Posted by 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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