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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사에서 사무보조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요즘. 직장생활이 어떤 건지 어깨너머로, 눈대중으로, 육감으로 많이 배우고 있다. 내가 맡은 업무는 '필요한 일'이긴 한데 '굉장히 민감한' 것이다. 나는 일개 아르바이트생이기 때문에 성실히 할 일 하고, 보고 잘 하고, 일처리 잘 하면 된다. 책임자는 따로 있기 때문에 대개 분쟁은 상인들과 윗선 사이에서 일어난다.

 한편, 그렇다고해서 책임이 아예 없거나, 회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나도 생각이 있고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중간에서 신중히 융통성을 발휘하거나, 분노가 분쟁으로 이어질 소지를 미리 잠재우곤 한다(이 문장을 적는데 몇몇의 얼굴이 스쳐지나간다. 에휴. 잘 풀려서 다행/아직도 꿍해서 피곤. 그 둘 중의 하나다.).

 

 오늘, 사무실에 이례적인 일이 있었다. 내 자리는 사무실 제일 안쪽이라 다른 부서에 비하면 조용한 편인데(소리가 잘 울리는 구조이긴 해도 말이다.), 입구에 있는 민원실에서 누군가가 분노했다. 여기까지 고래고래 큰 고함소리가 들릴 정도로. 지난번엔 스무 명 정도가 단장실까지 침투하려 했다는데 그땐 자리에 없었다. 그래서 이런 돌발상황은 처음 겪는 일이었다. 학창시절의 영향으로, 분노에 찬 고함소리를 들으면 가슴이 벌렁거리기 때문에, 몹시 불안해졌다(겉으론 무표정하게 자리에서 일을 하고 있었으니 아무도 모르셨겠지만.). 부서 직원들도 술렁였다.

 몇 번 더 고성이 들리더니 점점 소리가 가까워졌다. 분노를 사그러뜨리려 노력하는 어느 중년 남자가 보였다. 그는 부서 직원 중 한 명의 팔짱을 (억지로)끼고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내가 하는 일을 담당하는 차장님 이름을 불러대며 금방이라도 싸울 기세로 으르렁거렸다.

 많이 차분해진 상태로 대화가 시작되었지만, 고성은 여전했다. 만일 조사업무 때문에 올라온 거라면, 실제로 돌아다니는 나까지 엮여 더 큰 문제가 될 수도 있겠다고 판단했다. 바로 자리를 떴다. 그리고 옥상에 올라가 가볍게 산책을 하고, 시간을 보냈다.

 

 맑은 하늘을 보다가 그 중년 남자의 일그러진 얼굴이 떠올랐다. 아니, 그뿐만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의 얼굴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싸우는 사람들의 얼굴이. 그르렁, 으르렁, 캬악... 다들 이상한 괴성을 내고 있었다. 아마 내가 기억하는 그들의 언어가 혼잡해져서 그렇게 되었으리라. 기괴하고 이상한 광경이었다.

 그런데 일순간 그 모든 얼굴이 흐물흐물 녹아내렸다. 그리고 여러 광경이 펼쳐졌다. 아마도 자식들일 아이들과 함께 함박웃음을 지으며 끌어안고 있는 모습. 아마도 아내일 여자와 둘이 끌어안고 행복해하는 모습. 아마도 남편일 남자와 함께 TV를 보며 하하 웃는 모습.

 

 "애틋함"

 내가 그 순간 느낀 감정이었다.

 

 결국은 다들 안정되고, 사랑받기 위해 이를 악물고 하루를 살아간다.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으로 차장님을 찾아온 중년남자도 집에 가면 아내와 자식들이 있을 것이다. 차장님에게도 아내와 아이들이 있다. 나도 집에 들어가면 한 가정의 장남이며, 내가 상대하는 상인들은 집안의 가장이다. 모두 소중한 사람들이고, 행복해지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는 것이다. 서로 사실을 조금만 인지해준다면, 너무 각박하게 돌아가지는 않을 텐데. 무한경쟁사회에서 먹고 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것일까?

 

 오늘도 하루가 저물어간다.

Posted by 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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