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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가조치로 군대에서 돌아온 뒤, 조용히 지내고 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회복'도 겸하고 있다. 입대 전에 싹 다 정리하고 마음가짐도 다잡고 했는데, 돌아와버렸으니 허탈함이 여간 큰 게 아니었으니. 어쨌든 재신검+재입영 전까지는 복학도, 입대도 할 수 없기 때문에 '휴가' 혹은 '재도약' 기간으로 생각하고서, 서서히 생활을 잡아가는 중이다.

 생활의 기틀을 잡아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은, 다름아닌 글쓰기이다. 스스로가 봐도 참 역설적이다. 입시 실패와 여러 사연으로 '글은 그저 취미수단'으로 생각하고 이전만큼 치열하게 쓰지도 않는데. 간혹 글쓰기를 지양하는 마음도 들곤 하는데(글을 위험하게 '휘둘렀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데 회복의 기틀이다. 너털웃음이 나온다.

 그렇다면 어디서 글쓰기에 다시 자극을 받았던가, 되짚었다. 첫번째는 일기다. 입대 선물이라고 왕틴들이 돈을 모아 케이크와 일기장을 선물해주었다(선물은 동갑내기 친구가 고민고민하다가 기도하고 골랐다는데, 나도 모르게 내게 필요했던 것이었다. 할렐루야!). 가격을 떠나서, 굉장히 쓰고 싶게 생긴 일기장이다. 표지나, 속지나. 무게감도 적당하다. 게다가 이건 무슨 일이 있어도 집(혹은 그에 준하는)에서 쓰기로 정했기에, 독자를 최소한으로라도 의식하며 썼던 것과는 달리 정말 진솔하게 내면을 바라볼 수 있다.

 두번째는, 얼마 전 본 근대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의 영향이다. 극 전반에 걸쳐 시인으로서의 고뇌가 짙게 드러나있다. 자랑스럽게 내놓을 정도는 못 되지만, 소설을 써본 경험이 있어서 고뇌에 공감했었다. 당시 시대상까지 덧입히면, 아마 나와의 것과는 급이 달랐으리라. 또한, 모든 남자 주연들이 '시는 나에게 무엇인가'라는 가사가 들어간 곡을 부르는 장면이 몇 번 있는데 그게 깊게 뇌리에 남았다. 고등학교 시절 문학소년이었던지라, 그 자문에 대해 같이 가슴 뛰었던 기억이 난다. 연극은 8월 중순에 끝났지만, 여운은 아직까지도 남아있다.

 세번째는, 독서다. 요즘 김연수님 신작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을 읽고 있는데, 역량 있는 작가라 그런지(<세계의 끝 여자친구>를 꼭 읽어보시길!)순식간에 1/3을 읽었다. 그러면서 드는 충동 '나도 이런 읽을만한 이야기 하나 쓰고 싶다'. 꼭 김연수님이 아니라도 잘 쓴 이야기, 맛있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그런 충동이 든다. 아마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문청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증세 아닐까?

 

 여차저차한 이유가 나열되어 있지만, 근본적으로 '버릇'이 되어버렸기 때문이 아닐런지. 제버릇은 남 못 준다고, 중고등학교 4년간 치열하게 글 하나 바라보며 살았던 문청시절의 선연한 흔적이, 지금까지도 살아 숨쉬는 것이라 생각한다. 결국은 떼어놓질 못하는구나, 글쓰기를.

 글쓰기는 늘 어렵지만 또 좋고, 재밌기도 하다. 늘 첫대면 같다.

Posted by 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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