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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락 잘 안하는 내 습성을 고치고자, 멘티들에게 문자를 돌렸다. 야자 때문에 다들 11시가 넘어서야 답장이 왔다. 한 명 한 명 붙잡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누었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전화로 한다는 게 정말 아쉬웠다. 아웃팅 한 번 해야지.
 통화를 마치고 책상을 정리하는데 문득 '야자'에서 생각이 머물렀다. 참 많은 풍경들이 차례차례 지나갔다. 그 가운데 느끼는 건 '따뜻함'이었다. 뭐가 야자를 '따뜻하게' 기억하도록 만든 걸까? 생각은 꼬리를 물고, 새로운 생각을 뿜어냈다.
 언론이나 대중적인 인식을 보면 야간자율학습은 강제라는 인식이 강하다. (하기 싫은)공부를 억지로 심야까지 남아 해야 하는 고역이라니. 공부하기 좋아하는 학생이 드물다는 걸 감안하면 정말 끔찍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 학교는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늘 야자 신청인원이 수용인원을 넘어섰고, 따라서 자리다툼이 치열했다. 야자 담당 선생님들은 매번 고생이 많으셨다. 결석이나 도망으로 오점이 생긴 애들이 야자 빼지 말아달라고 매달리는 통사정 들어야지, 못 들어간 애들은 자리 나면 자기한테 달라고 부탁 또 부탁을 하지.. 이런 분위기 속에서 2,3학년을 보냈기에 야자에 대해 '강제'라는 이미지가 없었다.
 그리고 나는 '야간자율학습'이라는 의미에 정말 충실했다. 내가 하고 싶은 공부(대개 문학)를 자율적으로 했다. 수능대비공부가 안 되는 날이면 망설이지 않고 소설이나 시집을 꺼내 읽거나, 생각나는대로 글을 썼다. 피곤하면 엎드려 잤다(선생님들이 깨우셔서 중간에 일어나긴 했지만). 자유롭게 산책했다. 학교 건물 안을, 밖(운동장)을. 야자실 전체의 고요함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데 집중하기에 최적의 환경이었다. 수능이나 모의고사, 중간기말고사가 가까워질 때 생기는 특유의 긴장감은, 어느 하나에 좀 더 치열하게 몰두할 수 있는 좋은 조건이었다.
 마지막으로, 끝나고 돌아가는 시간이 무척 좋았다. 우리 학교는 9시와 11시 반 이렇게 두 번의 귀가시간이 있었는데, 나는 대개 11시 반에 가곤 했다. 11시 반을 몇 번 치러낸 사람은 알 것이다. 30분이 가까워질 무렵부터 여기저기서 분주히 나는 바스락바스락 소리와, 곧 집에 간다는 무언의 분위기와 표정들을. 그 순간의 야자실 분위기를 무척 좋아했다. 오히려 그때, 끝났을 때보다 더 많은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집으로 향하며 즐겁게 이야기 나누는 것도 사랑했다. 조금 과장해서 이야기하자면, '전우애'를 느꼈다고나 할까? 긴 시간, 함께 야자를 거쳐 각자 집으로 돌아간다. 내일이 되면 또 학교에 오고, 야자를 치르게 된다. 그런 동질감이, 우리들 사이에는 있었다.
 그래서 야자를 생각하면 따뜻하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 야자를 하고 싶을 때도 있다. 수험생이라는 신분은 끔찍했지만, 야자를 할 때는 수험생활 중에 가장 행복한 순간이 아니었나 하고 회상한다.

 글을 마치는 지금은 12시 18분. 몇 년 전에도 야자를 마친 뒤 이 시간에 이 짓(일기쓰기)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_달라진 거라면 대학생이 되었다는 것과, 이제는 야자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는 점 등등 많은 것이 변했다. 고등학교 생활 언제 끝나나 싶었는데 벌써 이렇게.
 아, 세월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는다더니.

Posted by 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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