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하고서 할머니 댁을 찾아갔다. 집에서 출발하는 것보다 근무지에서 출발하는 게 더 가깝기도 하고, 복지관에서 돌아오신 뒤라 댁에 계신 까닭이었다. 두 달 전에 찾아갔었지만, 그새 길을 잊어버려 위성지도와 로드뷰로 검색했다.
할머니가 사시는 곳은 몇 십년 전만 해도 힘차게 발전했지만, 지금은 쇠락한 동네다. 그때문인지 어렸을 적 풍경과 거의 일치했다. 달라진 게 있다면 길 양 옆으로 있던 사무실 건물들이 조금 바뀌었다거나, 리모델링을 해서 새로워진 집이 있다는 것 정도. 그리고 꼬마였던 내가 커져서, 길 폭이 좁아지고 벽이 낮아진 것처럼 느꼈다는 것.
길을 걸으며 지난번과 같은 생각을 했다. 변한 게 없다, 생각보다 가깝다, 그런데 난 왜 이제서야 여길 찾아왔을까? 할아버지도 살아계실 때 왔으면 더 좋았을 걸. 아직 할머니라도 계셔서 다행이다. 더 자주 찾아봬야지.
할머니는 저녁식사도 마다하시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데 집중하셨다.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 생각들, 어렸을 적 에피소드 등. 같이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할머니께는 큰 힘이 되는 것 같았다. 이젠 연세가 있으셔서 머리도 새하얗고, 거동도 불편하시지만, 이야기할 때만큼은 예전과 다를 게 없으셨다.
한 시간 반 정도, 내내 이야기를 나누다가 작별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가는 길에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가, 가라앉았다가, 다시 튀어올랐다가, 잠잠해졌다. 이게 뭘까? 스스로에게 설명하려고 해도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는 이 느낌은. 앞으로 자주 찾아뵈면서 이 묘한 느낌을 좀 더 구체적으로 끌어내리라.
가끔 할머니께 찾아가는 게, 본인은 물론 나에게도 정서적인 안정을 가져다주는 것 같다. 알게 모르게 큰 영향력을 미친다. 내 마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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