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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늘

등산 여정/이미지 2012. 5. 31. 10:22

참조 사진:

http://thehobbit.tistory.com/157

 

 좀 칙칙한 색을 띤 하늘.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이 먹구름이 잔뜩 끼어있다.

 

 "보고 싶다."

 창가에 걸터 앉은 내 친구는, 방금 그렇게 중얼거렸다.

 "누가?"

 "어머니, 아버지, 용수, 철민, 지선, 유준.. 다."

 "왜. 연락할까? 여기로 오라고?"

 "아니. 아니야."

 그는 대뜸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을 읊기 시작했다.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 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야 임마. 아침인데 별이 어딨다고 별 타령이냐."

 나는 그렇게 핀잔을 주었지만, 그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너는 내 친구 맞지?"

 "그럼."

 

 그는 초점 없는 눈으로 창 밖을, 정확히는 아래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저기 꼬물꼬물 움직이는 게 다 사람이야. 다들 열심히 살고 있는 것 같아. 우리도 그렇고."

 "그치."

 "그런데 저 중에는 '믿는다'는 행위가 가능한 선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사람을 너무 좋아해서 탈인 이 친구는 얼마 전, 친하게 지내던 거래처 직원에게 큰 사기를 당했다. 결과로 그는 징계를 받았고, 열정적인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

 "글쎄. 없지 않을까? 야, 나도 믿지 마."

 그는 내 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껄껄 웃었다.

 "어이, 개독교인. 하나만 묻자. 니네가 믿는 하나님이랑 예수는 우리를 사랑한다면서?"

 "그래."

 "그런데 삶은 참 팍팍하잖아. 꼭 내가 그런 일을 당해서가 아니라, 평소에도 말이야. 하루하루가 참 힘들잖아."

 "그렇지."

 "이게 사랑이냐? 너네 신은 변태야?"

 차근차근 설명하듯 이야기 해주려다 문득, 그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네 신'이 아니래도. 그럴지도 몰라.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분이라는 말이 성경에 있어. 우리 사랑을 받지 못해서 질투하신다고. 세상이 가면 갈수록 악해지고, 희망이 없어지는 까닭은, 우리가 하나님에게 의지하도록 하려는 걸지도."

 그는 특유의 웃음으로 말을 이었다.

 "네가 날 아무리 전도하려 해도, 난 종교 같은 덴 관심 없어. 신이 어딨다고."

 "몇 년 전만 해도 나도 그랬지. 그래서 네 심정이 이해가 간다."

 나는 그의 눈을 쳐다봤다.

 "어쨌든 세상에는 너를 사랑하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 하나는 기억하길 바라. 네가 아무리 신을 믿지 않는다고 해도, 그거 하나는 정말 큰 위안이 될 테고, 언젠가는 하나님께 돌아올지도 모르지, 나처럼."

 "하여간 종교쟁이들은."

 그는 귀찮다는 듯 자리를 떴다.

 

 창 밖으로 넓게, 도시가 있다. 차가, 사람이, 비행기가, 왔다갔다한다. 그 풍경 위에 하늘이 펼쳐져 있다. 불현듯 먹구름이 좌우로 갈라진다. 강렬한 햇빛이 비친다. 길을 걸어가던 사람이 잠시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는 나를 보지 못하지만, 나는 그를 본다. 형언할 수 없는 복잡한 표정이다. 이윽고 다시 구름이 해를 가린다. 그는 가던 길을 걸어간다. 그러다 아쉬운 듯 하늘을 다시 올려다보고, 불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나는 그를 보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괜찮아요, 지금 당장 보이는 건 먹구름 투성이인 하늘이지만, 잠깐 나타났던 '강렬한 햇살'은 언제나 당신을 비추고 있습니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한참동안 하늘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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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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