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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93

 "자기가 죽는다는 건 누구나 알지만, 거의 모든 사람들이 마음속에서 그 생각을 밀어내고 산다는 거죠. 항상 그 생각이 머릿속에 있지만, 누가 물었을 때가 되서야 안다고 대답하죠. 하지만 그러다가 갑자기 그걸 알게 되는 순간이 있어요, 안 그래요? 문득 내가 언젠가 죽는다는 생각이 떠오르면 '세상에, 이게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인데 잊고 있었구나'라는 말이 나오죠."

 

p.105

 자살은 한순간일 뿐이라고 렉시는 내게 말했다. 그녀는 내게 자살을 꼭 그렇게 표현했다. 한순간의 일이라고.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거나, 태양이 빛나고 있으며, 보고 싶어 안달하던 영화가 이번 주에 개봉한다는 사실 따위는 안중에 없게 되는. 잘 되는 일이 아무것도 없ㄱ으리란 생각이 퍼뜩 떠오른다. 영영 그럴 것 같다. 그래서 자신에게 묻는다. 이게 다란 말이야?

 

 p.106

(자살을 결심했다가 포기한 뒤)그러면 평범한 생활로 돌아간다. 하지만 그것은 마음에 계속 남는다. 그 생각을 일부러 하지 않더라도, 그날의 선택권이 내게 있다는 걸 알고 위로를 받는다. 사탕을 뺨 안쪽에 밀어넣듯이, 그 생각을 마음 구석에 밀어놓는다. 그 뒤에 묻어둔 기억은 혀를 굴릴 때의 달콤한 쾌감과 똑같다.

==============================

 동사무소 도서관 서가를 거닐다가, "당신도 개에게 말을 건네본 적이 있나요?"라는 문구에 이끌려 선택한 책. 나도 짱이한테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했었지. 속상하면 끌어안고 울기도 하고ㅎㅎ 보고 싶구나. 그 예쁜 얼굴, 아름다웠던 털도 이제 슬슬 썩어가고 있을까. 죽은지 벌써 아홉 달이 지났네.

 

 책을 덮고 느낀 건, 음. 이 책을 이해하기엔 내가 경험이 너무 없다. 그런 것도 느꼈고, 예상했지만 '재미'가 주된 건 아니라는 점(바로 전에 읽은 책이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인 영향이 있다.). <하치 이야기>처럼 개가 중심이 되어 풀려나갈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서 실망 아닌 실망을 한 점도 좀 있고.

 하지만 폴과 렉시가 함께 했던 추억들을 되짚어나가는 전체적인 구성, 그리고 한 이야기 한 이야기 속에서 씨실과 날실이 교차하며 만들어지는 깊은 의미 등은 짜임새 있다.

 렉시가 이따금 분노를 참지 못하고 폭발했다가 후회하는 연약한 모습 등은 나도 모르게 조금 안도하며 읽었다. 내 모습과 겹치기도 했고, 마치 아무런 결함이 없는 것 같은 여러 소설 속 여주인공들과는 대비되었던 까닭이다. 비교의식이 불러온 안도감 같다.

 

 나중에, 언젠가 내가 아주 사랑했던 누군가를 떠나보내게 된다거나 결혼해서 아내가 생기거나 한다면. 풍파가 몰아치고 삶의 질곡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이 간절해지면. 그때 다시 생각날 소설일 거라 생각한다. 솔직히 지금은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

Posted by 비류
|


님아

아티스트
자우림
앨범명
Goodbye, grief.
발매
2013.10.14
배경음악다운받기듣기

[가사]
어여쁜 내 님아,
내 받고픈 것은 금도 돈도 아니라오.
서러워 마소,
그 고운 얼굴에 근심이 가득하오.
훠이 훠이 훠이

해사한 내 님아,
내 님 웃으라고 노래도 주고 꽃도 주리다.
다 지나가오,
그 고운 가슴에 슬픔일랑 묻지 마오.
훠이 훠이 훠이
훠이 훠이 훠이 훠이

님아, 내 님아 꽃 같은 님아.
님아, 내 님아 해 같은 님아.

님아, 내 님아 꽃 같은 님아,
어디 멀리 가지 마오.
님아, 내 님아 해 같은 님아,
혼자 그리 가지 마오.

강에 가면 검은 물이, 산에 가면 어둠이
내 님을 데려 가려 하네,
훠이 훠이 훠이 훠이 훠이

님아, 내 님아 꽃 같은 님아.
님아, 내 님아 해 같은 님아.


 

-처음에 재생목록에서 제목을 보았을 때 받은 인상: "님아? 나 초등학생 때 게임에서 자주 쓰던 말인데."

-다른 곡들에 비해 긴 전주. 도대체 무슨 노래이기에.

-마침내 시작된 노래. "어여쁜 내 님아 내 받고픈 것은 금도 돈도 아니라오. 서러워 마소..."

 

끝까지 다 듣고 몇 가지 곡이 떠올랐다. 하나, 이수영의 <휠릴리>. 둘, 민요 <아리랑>. 셋, 위치스 <떴다 그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참 생뚱맞은 조합이지만, 이 세 가지가 어우러진 느낌을 받았다. 한 곡 한 곡 설명해보기로 하자.

 

 <휠릴리>에 담긴 정서가 이 곡이랑 비슷하다고 느꼈다. 직접 글을 쓰면서도 기분이 묘하지만, 그랬다. 음색이나 곡의 속도나 연주하는 데 쓰인 악기 등등은 다 다르지만, '정서'가 거의 같다고 생각했다. 이쯤에서 <휠릴리>의 일부를 보자.

휠릴리~ 여길 좀 보아요 휠릴리~ 내게로 걸어와요
휠릴리~ 왜 잘못 가나요 잘 봐요 그녀가 아니라… 나예요…

* 얼마나 불어야 아나요 얼마나 커야 그대가 듣나요
고단한 사랑은 한번도 쉰적이 없는데
언제나 날 알아 보나요 언제나 날 사랑하게 되나요
그대가 나라면 참 쉬운 일일텐데

 <님아>에서 여러 번 반복되는  '님아 내 님아 꽃 같은 님아, 해 같은 님아.. 훠이 훠이 훠이.' 그리고 곡 전체를 통틀어서, 마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가지 말라고 절절하게 매달리는 듯한 여러 대목들('내 님 웃으라고 노래도 주고 꽃도 주리다' '강에 가면 검은물이 산에 가면 어둠이 내 님을 데려가려 하네'). 보고 싶고 곁에서 나를 사랑해줬으면 하는 건 두 곡 모두 마찬가지인 것이다. <휠릴리>가 좀 더 여성적으로, 다소곳하게, 어찌할 바 모르고 사랑을 노래하는 이미지일 뿐이지.

 이런 느낌의 연장선상에서 <아리랑>과 <떴다 그녀>를 떠올렸다. 온 국민이 다 아는 아리랑의 가사를 되새겨보시라.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 나를 버리고 가시는 임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 정말 진심으로 발병나기를 기원하는 저주의 노래가 아니라, 그만큼 내 님을 붙잡고 싶은 소망이 간절한 것임은 다들 잘 아실 것이다. 

 <아리랑>을 떠올리게 만든 요소가 더 있다면, 다소 예스러운 느낌이 나는 어미(아니라오, 하지 마오, 가지 마오). 그리고 이건 개인적인 연상인데, 곡을 듣고 있으면 왜 부채춤 같은 게 생각나는지. 내공 가득한 김윤아의 목소리가 빚어내는 이미지라고 생각한다. 꼭 판소리 창 하는 것처럼 구성지다.

 마지막으로 <떴다 그녀>. <떴다 그녀>는, 엄청 기다리고 바라고 쫓아다니던 그녀가 다시 내게로 왔다는 내용을 담은 곡이다. 빠른 곡으로, 우악스러운 느낌을 준다. 하지만 듣다보면 한 번쯤 '피식' 웃을만한 가사로 이루어져 있다. 좋아서 죽을 지경인 것이다. 그토록 사랑하고 바라던 그녀가 다시 내게 왔으니. 체면이고 뭐고 없다. 점잔 뺄 것도 없다. 그냥 좋아 죽는 것이다. 이리저리 뒹굴고 모양 빠지는 상황이 되어도 어쨌든 좋은 것이다. 왜? 그녀가 내게 왔으니까. <휠릴리>의 정서 + <떴다 그녀>의 정서가 반반쯤 어우러진 인상을 <님아>를 들으며 줄곧 받았다.

 

 웃프다. 미소 지어지는 동시에 가슴 한쪽이 조금 아프다. 현대판 아리랑이 아닐는지.

Posted by 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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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분간은 <Goodbye, grief>에 수록된 곡에 대한 리뷰를 쭉 적을 것 같다. 최종적으로는 앨범 전체에 대한 인상을 담게 되겠지?)

 


이카루스

아티스트
자우림
앨범명
Goodbye, grief.
발매
2013.10.14
배경음악다운받기듣기

[가사]
난 내가 스물이 되면 빛나는 태양과 같이
찬란하게 타오르는 줄 알았고
난 나의 젊은 날은 뜨거운 여름과 같이
눈부시게 아름다울 줄 알았어.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 사소한 비밀 얘기 하나,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아.

자, 힘차게 땅을 박차고 달려 봐도
보이는 건, 보이는 건...

난 내가 어른이 되면 빛나는 별들과 같이
높은 곳에서 반짝이는 줄 알았고
난 나의 젊은 날은 뜨거운 열기로 꽉 찬
축제와 같이 벅차오를 줄 알았어.

아무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숨을 죽인채로
멍하니 주저앉아 있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

자, 힘차게 땅을 박차고 달려 보자,
저 먼 곳까지, 세상 끝까지.
자, 힘차게 날개를 펴고 날아 보자,
하늘 끝까지, 태양 끝까지.

난 내가 스물이 되면
빛나는 태양과 같이 찬란하게
타오르는 줄 알았어…

 지난주에 <스물 다섯, 스물 하나>에 대한 리뷰를 적은 뒤, 이번엔 어떤 곡에 대해 적어볼지 고민했다. 어쨌든 마음에 쏙 들어야 쓸 맛이 나니까. 이리저리 재생목록을 돌리던 중, 첫 느낌부터 확 끌리는 또 하나의 곡을 발견했다. <이카루스>. "난 내가 스물이 되면 빛나는 태양과 같이 찬란하게 타오를 줄 알았고." 마치 내 심정을 대변하는 것 같아서 피식 웃고 말았다. 가사를 띄워놓고 음악과 함께 살펴보니 더 가관이었다.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아", "자 힘차게 땅을 박차고 달려 봐도 보이는 건 보이는 건" ...

 타이틀곡 <스물 다섯 스물 하나>이외에 뮤비가 있는 곡은 이 한 곡뿐이 없다. 그만큼 비중을 뒀다는 의미인데.. <스물 다섯~>도 그렇고 이것도 그렇고 가사가 참 아련하게 다가왔다. 두 곡을 종합해서 듣고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니 '멜랑꼴리'한 느낌이다. 가슴 한 쪽을 묘하게 허전하게 만드는 느낌? 앨범 제목은 <슬픔이여 안녕>인데.. 그래서 앨범을 처음부터 끝까지 정주행했다(이런 경우는 정말 드문데. 참 큰 마력을 지닌 곡과 구성이다. 정주행 이후의 감상에 대해서는 맨 마지막, 앨범 종합리뷰에 다 적어두기로 하자. 일단 여기서는 <이카루스>에 대한 감상만 담아두기로!).

 

 정주행 이후 차분하게 <이카루스>를 다시 들었는데, 또 피식 웃고 말았다. '잘 들을 걸.' 특히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아는데. 노래도 그렇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2절 또한 1절과 비슷한 구조로 시작한다. "난 내가 어른이 되면.. 반짝이는 줄 알았고.. 축제.. 벅차오를 줄 알았어.." 하지만 뒤이은 부분에서 변화가 일어난다. 무척 마음에 들어서, 한 번 더 실어야지.

 "아무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숨을 죽인채로 멍하니 주저앉아 있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

  자 힘차게 땅을 박차고 달려 보자. 저 먼 곳까지 세상 끝까지. 자 힘차게 날개를 펴고 날아보자

  하늘 끝까지 태양 끝까지."

 그 직후에 도입부("난 내가 스물이 되면..")반복. 무척 사랑스러운 구성이다.

 

 얼핏 들었을 때는 '사실 스물이 되고 보니 난 아무 것도 아니더라'에 대한 좌절감, 넋두리에서 끝나는 한풀이 노래라고 느낄 수 있다. 자세히 들으면 그렇지 않기 때문에 나는 이 노래가 더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신화 속 이카루스는 추락사 하기 전에 새로 변하게 되어 간신히 목숨을 건졌고 그 영향으로 높이 않는 새가 되었다. 그러나 자우림의 <이카루스>는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진 뒤에 다시 꿋꿋이 일어나 다음을 기약하는 이미지를 떠오르게 한다. 재도약을 꿈꾼다. 그것도 아주 힘차게. 패기롭게.

 1절과 2절 사이의 '라 라 라'하는 몽환적인 간주는, 기어이 비상하고 말겠다는 독한 의지를 되새기는 시간의 느낌이다. 날개를 바꿔 다는 것 같기도 하고.. 재정비.

 그런 이유로 맨 처음과 맨 마지막에 반복되는 "난 내가 스물이 되면.."은 탄식이나 주저앉아서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이 아니라, 현실을 덤덤히 받아들이고 마음을 독하게 먹는 청춘을 떠올리게 한다.

 

 참 맛있는 곡이다. 재밌는 곡이다. 노래는 끝까지 들을 것.. 그리고 좌절하지 말고 자리 툭툭 털고 일어날 것 등등.. 여러모로 참 좋은 메시지를 준다. <슬픔이여 안녕>의 다른 곡도 깊이 감상해보고 해부해야겠다. 각자 곡은 형식이 다르지만, '앨범'이라는 한 가족의 형태로 담겨 있으니 일맥상통하는 어떤 것이 있겠지? 내멋대로 리뷰를 쓰면서, 보컬 김윤아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니 슬쩍 미소가 지어진다. 겉으로 보기엔 엄하지만 속은 따뜻한 누나/언니의 충고처럼 들린다. 음악이라는 매개를 통한 좋은 충고.

 

 "야,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도 몰라? 그러니까 주저앉아서 울지 말고 일어나. 뭐라도 해봐야 할 거 아냐."

Posted by 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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