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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아침, 입에서는 한숨과 욕이 나오면서도 머릿속으로는 '아, 그런데 이 상황은 어떻게 감사하면 좋지? 감사할 부분을 궁리해봐도 짜증만 나는데..'라는 고민을 하는 스스로를 발견하고 참 많이 놀랐다. 어떤 상황이었는지 적어두고자 한다.


 어제는 굉장히 늦게 잤다. 2시 즈음 잠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새벽기도를 가려면 5시, 늦어도 5시 반에는 일어나야 했기 때문에 바짝 긴장한 상태로 잠들었다. 그게 효과가 있긴 했는지 4시 50분에 깼다. 그러나 '10분만 더'라고 생각하다가 결국 7시에야 일어나고 말았다. 기도회는 이미 끝났고, 1시간 뒤에 있는 헤드회의도 제시간에 갈 수 있을지 아슬아슬한 상황이었다. 집에서 사무실까지 45분 정도 걸리니까.

 황급히 나갈 채비를 하고 현관으로 뛰쳐나갔는데, 나가려고 신발을 신는 찰나 동생이 맞춰놓은 알림이 울렸다. 방문을 열고 일어나는 걸 확인한 뒤 집을 나섰다. 그런데 아뿔싸, 1초의 차이로 엘리베이터가 내려가버렸다. 게다가 그리 높은 층도 아닌 3층에서 서는 것이 아닌가. 속에서 이것저것 여러 생각이 들끓었다. 물론, 좋지 않은 감정이었다.

 마음을 달래고, 1층에 내리자마자 황급히 버스정류장으로 달렸다. 나오기 전에 버스어플로 도착예정시간을 확인했던 바, 거의 근접했기 때문에 일단 달렸다. 그런데 근접해도 너무 근접해있었다. 정류장이 보이는 길로 나오자 이미 버스가 정류장을 향해 가고 있었다. 승객이 한 명 있었기에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계속 달렸는데, 버스기사 아저씨는 승차 문 근처까지 온 나를 발견하지 못하고 그냥 휑 떠나버렸다.

 이 시간대 버스 배차간격은 8~10분. 환승할 5호선은 배차간격 10분. 지각은 거의 따놓은 당상이었다. 내가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새벽기도를 가지 못한 게 문제였으나(헤드회의는 새벽기도를 나온다는 전제 하에 그 시간에 진행되니까.), 한편으론 그 몇 초가 정말 화가 났다. 동생을 깨우지 않았으면 엘리베이터를 잡을 수 있었을 텐데. 3층에서 누르지 않았다면 잡을 수 있었을 텐데. 버스가 몇 초 더 기다려주었다면 타고 갈 수 있었을 텐데. 입에서 한숨과 욕이 나왔다.

 다음 순간, '그런데 이걸 어떻게 감사의 제목으로 삼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도 정말 놀라운 발상이었다. 지부사역으로 섬기는 교회의 2013년 표어가 '감사하면 행복합니다'라서 평소에도 감사노트를 적고 있긴 했다. 그런데 이렇게 실제적으로 사고의 변화가 일어난 것을 확인하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이런 태도가 하나님 보시기에 마음에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다행히 회의는 딱 5분 늦었다. 그 5분도 서로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느라 정식으로 시작되진 않은 상태였다. 그때 깊이 감사했다(웃음).

 앞으로도 감사를 삶의 원동력으로 삼으며, 건강한 마음을 가질 수 있길 바라고 기도해야겠다. ^^

Posted by 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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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 연예인아!"

 

 요즘 친구들이 나를 지칭하는 말이다. 이 호칭을 들은지 몇 달 되었다. 처음엔 '뭐가 연예인이라는 거야?' 싶었지만, 요즘엔 수긍하고 있다. 그다지 바쁘지 않을 것 같은데 여기저기 참 바쁘게 돌아다닌다. 아침에 나가서 집에 들어오면 통상 10시, 11시. 방을 치우고 싶어도 집에 오면 피곤해서 바로 씻고 잠들게 된다. 다음날 새벽이면 새벽기도 가느라 일찍 집을 나선다.

 이렇게 바븐지도 모르다가, 며칠 전에 친구들이 하루 일정을 이야기 해달라고 했을 때 비로소 바쁘다는 걸 인지하게 되었다. 방에서 푹 쉬고 있는 지금, 이러한 새로운 인식이 조금 당황스럽다. 내가 이렇게 바쁠줄이야. 2주 뒤에 군사훈련 받으러 논산 가는 것도 실감이 나질 않는다. 그냥 이렇게 바쁜 와중에 시간 가다가, 훈련소에 뚝 떨어질 것 같다. 그때 정신상태는 괜찮으려나 모르겠네. 너무 극과 극인 환경이니.

 

 서원한 것은 그럭저럭 잘 지키고 있다. 지난 7년 간의 관습과 관성 때문에 힘들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정말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1월달에 집중해서 변화시키기로 한 습관은 '절반의 성공'이다. 2월달은 훈련소에 있으니 아무래도 그 부분에 대해서 고민해볼 필요가 있겠다.

 남은 1월도 알차게 보내서, 행복한 마무리가 될 수 있길 바라본다.

Posted by 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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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나요. 원곡가수 조성모.

 원곡이 나왔을 때 나는 초등학교 저학년(아마 2학년 즈음이었던 것 같은데..)이었다. 그런데도 <아시나요>나 <다짐> 이 두 곡에 대한 인상은 뚜렷하게 남아있다(전자는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때문이고, 후자는 라이브 방송에서 조성모가 입고 있던 특이한 의상 때문이다.). <아시나요> 뮤비 마지막 부분에 조성모가 소녀를 끌어안고 괴롭게 울부짖는 장면이 기억에 확 박혔다. 스토리도 가사도 잘 알지 못하고, 다만 그것만이 남았다. '무슨 일이지? 왜 저 사람은 저렇게 울부짖지?'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 덕에 멜로디도 귀에 익어, 가끔 노래방에서 부르곤 했다. 키를 낮춰서 간신히(웃음).

 

 최근, 더 원이 <아시나요>를 불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랑아>덕에 좋은 인식을 가지고 있는 가수라, 버스 안에서 친구와 함께 들었다. 경연 당시 동영상으로. 다 듣고서 받은 인상은, '잘 부른다'와 '기본 곡에 완전히 자기 색깔 입혀서 변형시켰네'였다. 특히 후반부의 독백은 '실험적인 편곡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애절한 감정을 더 끌어내기 위한 장치라는 느낌 또한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나중에, 이 곡의 사연을 알게 되었다. 가수 되는 것도, 제대로 술 한잔도 기울여보지 못하고 먼저 가신 아버지께 바친다는 것. 그러고 나서 전체를 들으니 가슴이 저려왔다. 특히,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독백 부분은 도리어 눈물샘을 가장 강하게 자극했다. 

 "들리,십니까? 제 목소리가. 소리칩니다. 제 목소리가, 하늘에! 닿을 때까지~예~"

 "아시나요, 들리나요, 내 말들이~ 가슴 속에 맺힌 수많은 말이~"

 

 돌아가신 아버지께 바친다는 이야기를 배제해도, 가슴 속에 맺힌 게 많은 나는 '가슴 속에 맺힌 수많은 말이~'라는 부분이 그렇게 공감되고 아플 수가 없었다. 하고 싶어도 하지 못했던 말, 솔직하지 못했던 말, 꺼냈다가 애써 돌려서 숨겨야만 했던 말.. 잊었으면 좋겠는데 문득문득 떠오른다. 나 같으면 벌써 눈물 펑펑 흘려버렸을 텐데. 감정 절제하는 것 보면서 '가수는 다르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렇게 한바탕 아파하고 나서 또 감상하니, 가사가 참 좋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되었다. 서정적인 감정에 젖어 노래로 풀고 싶을 때, 이 노래를 들어야겠다. 바라기는, '가슴 속에 맺힌 수많은 말이'라는 대목에서 더 이상 마음이 저릿하거나 힘들지 않을 날이 왔으면 좋겠다.

Posted by 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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